[임보미 기자의 야구찜]김주형, 유격수 우익수 3루수 떠돈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일 03시 00분


야구에도 경제학의 원리가 적용… KIA, 김주형 타격 살리려 다양한 실험
선수 가치는 상대적 가치로 결정… 감독, 어중간한 멀티플레이어보다
한가지 확실하게 잘하는 선수 선호

‘13년차 유망주’ 김주형과 그의 ‘상대가치’를 끌어 올리기 위해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린 프로야구 KIA 김기태 감독. 동아일보DB
‘13년차 유망주’ 김주형과 그의 ‘상대가치’를 끌어 올리기 위해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린 프로야구 KIA 김기태 감독. 동아일보DB
임보미 기자
임보미 기자
경제학의 기본 원리는 한정된 자원으로 최적의 선택을 찾아내는 것이다. ‘한정된 자원’이라는 전제가 없다면 경제학은 존재의 이유가 없다. 해외여행을 계획하는 억만장자가 가장 싼 비행기 표와 가성비 좋은 숙소를 찾느라 머리 쓸 이유가 없듯이 말이다.

프로야구에도 경제학의 원리가 곳곳에서 적용된다. 엔트리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선수는 27명뿐이다. 자유계약(FA) 보상선수로 내주지 않아도 되는 보호선수로 묶을 수 있는 인원은 더 적은 20명이다. 감독이 첫째로 풀어야 할 난제는 이 한정된 선수들로 최적의 조합을 찾아내는 것이다. 최고경영자(CEO)가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낼 수 있는 생산량을 찾듯, 야구 감독은 최대 득점과 최소 실점을 기대할 수 있는 라인업을 고민한다.

올 시즌 개막전 선발 라인업에서 가장 관심을 받은 건 KIA의 김주형이다. 김기태 감독은 108kg의 거구 김주형을 날렵함이 생명인 유격수 자리에 기용했다. 지난 시즌까지 백업 내야수로 나섰던 김주형의 방망이가 타선에 힘을 실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서였다. “할 수 있는 실험은 다 해봤다”고 한 김 감독의 승부수이기도 했다. 개막 후 2주간 ‘유격수 김주형’은 홈런만 4개를 터뜨리는 공격력으로 불안한 수비력를 상쇄했다. 하지만 5월부터 김주형은 실책을 쏟아냈다. 공격력으로 덮기에는 실책이 너무 많았다. 김 감독은 결국 김주형을 우익수, 1루수, 3루수, 대타로 기용하며 ‘최대 득점’을 뽑기 위한 고민을 계속해야 했다.

경제학을 지배하는 건 절대가치가 아닌 상대가치다. 국내총생산(GDP) 1위 미국과 GDP 150위권 밖인 피지도 서로 물건을 사고팔 수 있는 이유다. 모든 물건을 미국이 더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해도 서로 그나마 나은 비교우위가 있는 부분에 집중하면 전체적으로 얻을 수 있는 파이가 커진다.

‘이런 선수가 어떻게 1군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물음도 어리석기는 마찬가지다. 선수 가치 역시 상대가치로 결정된다. 공격, 수비, 주루에서 무난한 실력을 보이는 A와 공격은 되지만 수비와 주루가 엉망인 B가 있다면 대체로 감독들의 선택은 B다. 한 가지라도 확실한 비교우위가 팀 전체에 득이 되기 때문이다. 1점을 짜내야 하는 승부처마다 대주자로 투입되는 넥센 유재신이 대표적이다. 2008년 데뷔 후 그는 ‘두 자릿수 홈런’도 아닌 ‘두 자릿수 안타’를 기록한 게 4차례뿐이다. 하지만 빠른 발은 그를 7시즌째 1군무대에 남게 만들었다.

‘절대가치’가 높은 박병호, 유한준, 밴헤켄 등 리그 정상급 선수들이 줄줄이 떠난 넥센은 올 시즌에도 리그 상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한 명 한 명의 비교우위를 앞세워 팀 전력을 극대화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두산이 30홈런 타자를 단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하고도 우승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절대가치에 비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상대가치’는 간과되기 쉽다. 오늘도 ‘야구 9단’ 감독들이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려야 하는 이유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김주형#3루수#김기태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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