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희, 닷새만에 금맥 뚫은 ‘태권 악바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19일 03시 00분


[올라!2016 리우올림픽]올림픽 출전권 간신히 딴 김소희
8강-4강-결승 모두 1점차 진땀승… 태권 첫 金… 한국에 7번째 금메달
올림픽 앞두고 체급 3kg 올려 “너무 힘들어 포기할까도 생각”
5년전 세계선수권때 손가락 골절… 코치 만류에도 출전 강행해 우승

태극기 휘날린 태권도 김소희가 18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경기장3에서 열린 
올림픽 태권도 여자 49kg급 결승전에서 티야나 보그다노비치(세르비아)를 7-6으로 꺾고 한국에 7번째 금메달을 안긴 뒤 한국 
응원단을 향해 태극기를 들어 보이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태극기 휘날린 태권도 김소희가 18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경기장3에서 열린 올림픽 태권도 여자 49kg급 결승전에서 티야나 보그다노비치(세르비아)를 7-6으로 꺾고 한국에 7번째 금메달을 안긴 뒤 한국 응원단을 향해 태극기를 들어 보이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리우데자네이루행 티켓을 힘겹게 손에 넣었던 김소희(22)가 올림픽 무대에서도 1점 차의 힘겨운 승부를 연이어 치른 끝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소희는 “이 기쁨을 느끼게 해주려고 하늘이 그동안 이렇게 날 힘들게 했던 모양이다. 오늘은 하늘이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김소희는 18일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태권도 여자 49kg급 결승전에서 세르비아의 티야나 보그다노비치(18)를 7-6으로 꺾고 정상에 오르며 한국에 7번째 금메달을 안겼다. 김소희는 “어제 잠자리에 들면서 러키세븐(7번째 금메달)이 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러키세븐을 채워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김소희는 첫판인 16강전에서 페루의 훌리사 디에스 칸세코(27)를 10-2로 무난하게 제압했다. 하지만 8강과 4강, 결승전에서는 모두 한 점 차의 진땀 승부를 벌였다.
 
▼ 하늘도 도왔다, ‘러키 세븐’ 태권 소녀 ▼

특히 8강전에서는 올림픽 랭킹 2위인 태국의 빠니빡 웡빠따나낏(19)에게 막판까지 2-4로 뒤지다 경기 종료 4초 전 극적으로 전세를 뒤집었다. 상대 머리에 3점짜리 발차기 공격을 성공시켜 5-4로 역전에 성공한 김소희는 웡빠따나낏에게 6-5로 승리했다. 4강전에서는 ‘골든 포인트제’(먼저 득점하는 선수가 승리)가 적용되는 연장 승부 끝에 프랑스의 야스미나 아지에즈(25)를 1-0으로 꺾고 결승에 올랐다. 결승전에서는 종료 15초 전까지 3점 차로 앞서다 막판 추격을 허용하면서 한 점 차 승리를 거뒀다. 김소희는 특히 뒷걸음질을 치다 경기 종료 버저와 거의 동시에 넘어지면서 금메달을 놓칠 뻔했다. 경고 9개를 받고 있던 김소희가 종료 버저가 울리기 전에 넘어졌다면 경고를 한 차례 더 받으면서 반칙패를 당하기 때문이었다. 경고를 10번 받으면 득점에서 앞서 있어도 반칙패가 선언된다. 세르비아의 요청으로 비디오 판독이 이뤄졌고, 승리의 환호를 질렀던 김소희의 얼굴은 하얗게 변했다. 1년 같은 시간 1분가량이 흐른 뒤 나온 판정에서 종료 버저가 울린 뒤에 김소희가 넘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김소희는 올림픽 출전권을 간신히 손에 쥐었다. 지난해 12월 멕시코에서 열린 세계태권도연맹(WTF) 월드그랑프리 파이널에서 1회전 탈락으로 랭킹을 끌어올리는 데 실패했다. 당시 김소희의 랭킹은 7위였다. 6위 안에 들어야 올림픽 출전권을 딸 수 있었다. 하지만 행운이 따랐다. 6위 안에 태국 선수가 2명이 포함된 것이다. 랭킹 쿼터는 체급별로 한 나라에 1장만 준다는 WTF 규정에 따라 7위인 김소희에게 출전권이 넘어왔다.

올림픽 첫 출전의 기회를 어렵게 잡은 만큼 김소희는 이를 악물고 준비했다. 원래 체급보다 3kg을 더 올려 나서는 대회라 체중을 늘리고 근력과 힘도 키워야 했다. 김소희는 그동안 아시아경기나 세계선수권에서는 46kg급에 출전했다. 하지만 올림픽에는 이 체급이 없다. 김소희는 1월부터 두 달 동안은 기술 훈련을 제쳐 두고 체력 훈련과 웨이트 트레이닝에만 죽기 살기로 매달렸다. 두 달 만에 하체 근력량을 30%가량 키웠다. 늘린 체중을 유지하는 것도 힘들었다. 김소희는 “이렇게까지 하면서 운동을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악으로 깡으로 버텼다”고 했다.

김소희는 어릴 때부터 ‘깡다구’가 셌다. 왈가닥이기도 했던 김소희는 아침에 흰 옷을 입고 나가서 저녁에 옷이 시커멓게 변한 뒤에야 집에 왔다. 주로 남자아이들과 어울려 산에서 개구리를 잡으며 놀았다는 김소희는 남자아이들한테도 지는 것을 싫어해 늘 앞장을 섰다고 한다. 깡은 셌지만 몸은 약한 편이었다. 코피를 자주 쏟았다. 이를 보다 못한 아버지가 딸의 건강을 위해 보낸 곳이 태권도 도장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서울체고 재학 중에는 태권도부이면서도 구간 마라톤대회에 학교 대표로 출전했을 만큼 뛰는 데도 소질이 있었다. 지구력이 좋은 김소희를 당시 육상부 코치가 ‘산소통’으로 불렀다고 한다.

2011년 세계선수권 때 보여준 부상 투혼은 김소희의 악바리 근성을 잘 설명해 주는 일화다. 당시 발가락 부상을 안고 출전했던 김소희는 대회 도중 손가락뼈가 부러지는 부상까지 당했다. 코치들은 말렸지만 김소희는 출전을 고집했다. 도핑 테스트 때문에 진통제도 먹지 않고 계속 출전한 김소희는 이 대회에서 우승했다. 세계선수권 첫 우승이었다. 김소희는 2013년 세계선수권 2연패를 달성했고,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 태권도의 희망으로 성장했다.
 
이종석 wing@donga.com / 리우데자네이루=황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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