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시절 ‘과묵한 스트라이커’로 이름을 날린 김종부 경남 FC 감독(53)은 몇 번의 실패작(?)이 나오자 애꿎은 배를 탓했다. “지금 배가 튀어나와서 이거, 허허.”
가슴 트래핑에 이은 오른발 터닝 슈팅. 한국에 월드컵 첫 승점(무승부 1점)을 안겨준 그때의 골 장면을 재현해 달라는 요청에 처음에는 “고마 됐습니다”라고 사양했다. 끈질긴 요청에 마지못해 나간 운동장. 슈팅이 마음처럼 되질 않자 오히려 오기가 생긴 듯했다. 다섯 번의 시도 끝에 기어이 32년 전 그때의 골 냄새를 맡은 김 감독. 옅은 미소를 띤 채 카메라를 쳐다봤다. “됐죠?”(웃음)
김 감독은 그런 선수였다. 말수는 적지만 성실하고 끈질겼다. 5일 경남 선수단 숙소가 있는 경남 함안공설운동장에서 만난 김 감독은 한창때였던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을 영광과 아쉬움이 공존하는 대회로 회상했다. 1차전에서 한국은 세계 최강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1-3으로 졌지만 월드컵 1호 골(박창선)이란 성과를 냈다. 한국은 불가리아를 맞아 첫 승을 노렸지만 전반에 선제골을 내주고 말았다. 그리고 이때까지 경기에 나서지 못하던 김 감독이 후반전에 모습을 드러냈다. 비가 내려 잔디는 축축했고 동료들은 지쳐 있던 후반 25분이었다. 상대 문전에서 조광래(대구 FC 단장)가 보낸 헤딩 패스를 페널티지역 정면에서 김 감독이 가슴으로 받아 오른발로 골망을 갈랐다.
“저는 주축(선수가)이 아니었어요. 월드컵 직전에 스카우트 파동도 있었고 개인적으로 그 골로 제 가치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저를 둘러싼 문제도 그 골로 해결될 수 있길 바랐죠.”
한국에 첫 승점을 안겨준 골의 주인공이 한 말 치곤 의외였다. 그도 그럴 것이 김 감독은 월드컵에 나서기 직전 당시 프로축구 구단인 현대호랑이와 대우로얄즈 사이의 치열한 쟁탈전에 휘말려 ‘가슴앓이’를 하고 있었다. 1983년 국제축구연맹(FIFA)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의 ‘4강 신화’의 주역으로 활약한 천재 스트라이커는 스카우트 파동 탓에 2년간 그라운드에 설 수 없었고 그 후유증으로 제대로 경기를 뛰지 못하고 일찍 선수생활을 접었다. 훗날 그에게 ‘비운의 천재’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이유이다.
“골잡이를 평가할 때 국내용, 아시아용, 세계용으로 가르는 기준은 자신감입니다. 마음의 크기라고 할까요. 이는 교만한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골잡이는 상대 견제가 심한 문전에서 항상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기에 정신력이 강해야 합니다.”
어찌 보면 그런 우여곡절 속에서도 골을 넣은 김 감독의 조언이 러시아 월드컵에 나서는 후배 골잡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말일지도 모른다. 최근 한국을 두고 ‘3패’를 언급하는 등 각종 비판적인 분석이 빗발치고 있다. 골이 없으면 승리도 없다. 어떤 어려움이든 이겨내고 상대 골망을 갈라야 하는 게 골잡이들의 숙명이다.
“스포츠는 희망이라 생각합니다. 할 수 있다는 가능성만 보여줘도 그것이 후배들에게 유산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주전이든 아니든 상황에 연연하지 말고 당당하게 땀 흘리고 오라고 말하고 싶어요. 당당해야 그라운드에 들어갔을 때 골도 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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