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의 토대를 닦은 구평회 E1 명예회장이 20일 오전 9시경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6세.
고인은 1926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1951년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옛 락희화학(LG화학)에 입사해 기업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이후 락희화학 뉴욕사무소장(전무), 호남정유(현 GS칼텍스) 사장, LG그룹 부회장, LG그룹 창업고문 등을 지내며 60여 년간 범(汎)LG그룹(LG, LS, LIG, GS그룹)의 성장을 이끌었다.
구 명예회장은 탁월한 교섭력으로 한국 중화학공업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1967년에는 미국 칼텍스와 합작해 민간 석유화학공업의 효시(嚆矢)인 호남정유를, 1984년에는 국내 첫 액화석유가스(LPG) 전문회사인 여수에너지(현 E1)를 설립했다.
재계에서 ‘재계의 외교관’으로 불릴 만큼 영어 실력과 해외 네트워크가 탄탄했던 그는 태평양경제협의회(PBEC) 국제회장, 한미경제협의회 회장 등을 지냈고, 2002년 월드컵 유치위원장을 맡아 한국의 첫 월드컵 개최에 기여하기도 했다. 이 같은 공로로 금탑산업훈장, 국민훈장 무궁화장, 필립하비브 국제전략지도자상, 페루 대십자훈장, 체육훈장 청룡장, 자랑스러운 서울대인, 한미우호상 등을 받았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는 2005년 발간된 구 명예회장의 팔순 화보집에서 “국내에서는 대통령을 비롯한 정계 인사들과 친분이 두터워 재계의 심부름을 많이 했고 밖으로는 민간외교를 담당해 동분서주했다”고 회고했다.
고인의 젊은 시절 따뜻한 마음 씀씀이도 인구에 회자된다. 고 한운사 작가는 같은 화보집 기고문에서 “서울대 시절, 온기 하나 없는 기숙사 방에서 벌벌 떨며 지내는 나를 안타깝게 여겨 창신동 (구 명예회장의) 집으로 옮기게 했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구인회 LG그룹 창업주를 포함한 범LG가의 1세대 육형제는 남달리 돈독한 관계로 잡음 없이 지금의 LG, LS, LIG, GS그룹을 키워냈다. 다섯째인 구 명예회장의 별세로 육형제 중 유일하게 남게 된 넷째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은 21일 서울 아산병원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구자엽 LS산전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구본준 LG전자 부회장 등 일가와 허창수 GS그룹 회장, 허동수 GS칼텍스 회장도 빈소를 지켰다.
고인의 장남인 구자열 LS전선 회장은 “아버지는 ‘묵묵히 일하고 깨끗이 떠난다’는 신념을 지켜온 참기업인으로 모두에게 기억될 것”이라고 애도했다.
이에 앞서 20일에는 남덕우 전 국무총리,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 권재진 법무부 장관, 이희범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등이 조문했고, 21일에도 김영삼 전 대통령, 임채민 보건복지부 장관,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등이 빈소를 찾아 유족을 위로했다. 이명박 대통령,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등 정재계 인사들은 조화를 보냈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부인 문남 여사, 장남 구자열 회장, 차남 구자용 E1 회장, 3남 구자균 LS산전 부회장, 딸 구혜원 푸른그룹 회장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24일 오전 7시 5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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