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게 웃는 영정이 ‘어두운 분위기 속에 가고 싶지 않다’던 고인의 소망처럼 알록달록한 꽃에 둘러싸여 있다. 자신을 대표해온 군더더기 없는 수묵의 세계에서 벗어나 정년퇴직한 뒤 ‘사람을 즐겁고 행복하게 만든다’며 즐겨 그린 꽃그림 속으로 들어간 듯 보인다.
‘현대 수묵화 운동’을 주도한 한국화가 남천 송수남 씨가 8일 오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별세했다. 2주 전 급성 폐렴으로 입원한 뒤 상태가 악화돼 영면했다. 향년 75세.
전북 전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홍익대 서양화과에 다니다 4학년 때 동양화과로 옮겼다. 시인 한하운의 시 ‘가도가도 황톳길’을 읽은 뒤 한국적인 것의 모색을 평생 화두로 삼았다. 추상 채색과 관념적 산수를 거쳐 1980년대 수묵을 통해 한국화의 틀에 현대적 미감을 접목한 수묵운동에 앞장섰다. 당시 고인은 “전통적 재료인 먹에 현대적 생명을 부여하고 단순한 선의 나열을 통해 담백하고 올곧은 선비정신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고인은 홍익대 교수로 30여 년 재직하는 동안 제자 사랑으로도 유명했다. 겉으론 호랑이 같은 스승이었으나 속내는 한없이 따스했다고 제자들은 회상했다. 박종갑 경희대 교수는 “어려운 형편의 학생들에겐 숙식과 작업실까지 챙겨주셨다”며 “30, 40대 작가들이 2003년 ‘동풍’전을 열 때 제대로 해보라며 사비 2000만 원을 털어 도와주셨다”고 말했다. 고인은 ‘설명이 많을수록 뜻이 전달되지 않는다’는 지론을 절제의 미학으로 표현했다. 박천남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은 “고답적 교육과 작업 분위기를 바꾸어 1980, 90년대 한국화의 르네상스를 이끈 주인공”이라고 말했다. 빼어난 글솜씨로 저서 10여 권을 냈으며 시인 신경림 씨와 시화전을 열기도 했다.
2011년 전주로 낙향한 고인은 “고향에 오니 창작의욕이 샘솟는다”며 작업에 전념했다. “채색은 즐거움이 있으나 깊이가 얕다. 수묵을 다시 해볼 생각이다”라는 다짐을 이루지 못한 채 먼 길을 떠났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7호. 발인은 10일 오전 5시, 장지는 천안공원묘원. 유족으로는 부인 염연진 씨와 2남 2녀가 있다. 02-2227-7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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