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분야의 거장으로 꼽히는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사진)가 22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81세.
고인은 지난달 혈액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으면서도 글을 계속 써왔으며 이날 갑자기 상태가 악화된 것으로 전해졌다.
1932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국문학과 민속학을 전공했다. 29세 때 대학교수가 된 뒤 충남대와 서강대 교수,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객원교수 등 반세기 동안 학교 강단에 섰다.
1991년에는 정년을 6년 남겨두고 서강대 교수직을 내려놓은 뒤 자연주의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같은 삶을 꿈꾸며 낙향했다. 그는 자연 속에서 책을 읽고 학문을 닦으며 영남 지역 주민을 위한 강연도 해왔다.
한국인 연구를 천업(天業)으로 삼아온 고인은 한국 한국인 한국문화를 다룬 저서 60여 권을 남겼다. ‘한국민속과 문학연구’ ‘한국문학사’ ‘욕, 그 카타르시스의 미학’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한국인의 자서전’ 등이다. 해마다 책 한 권 이상을 집필한 저자는 올해 6월 ‘상징으로 말하는 한국인, 한국 문화’를 썼다.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 깃든 다양한 상징에 대해 구수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 책이다.
일생 ‘책벌레’로 불려온 고인은 독서의 중요성을 꾸준히 강조해 왔다. 2008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는 “책 읽기는 마음을 가다듬는 즐거움이 있다. 쉽진 않지만 어려울수록 즐거움은 더 깊어진다. 바쁜 형편이 책 안 읽는 구실이 되어선 안 된다. 독서는 자신의 인간 가치를 살피는 일이다. 머리 고픔은 책 예술 자연을 통해서만 채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2002년 본보에 연재한 칼럼 ‘김열규 교수의 웃음의 인생학’을 통해 그는 허위와 위선에 칼침을 놓거나 고된 인생을 달래주는 해학의 글을 선보였다. 마지막 연재 칼럼에는 이렇게 썼다.
“죽음의 위기는 더없이 좋은 유머가 생겨날 터전이다. 유머의 미덕은 그것이 태어난 모태인 위기의 크기에 비례해서 증폭한다. 그러나 죽음 이외에도 삶에는 크고 작은 위기가 있기 마련이다. 또 갈등도 빚어지기 일쑤다. 이들도 역시 유머를 위한 좋은 계기가 된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일수록 그 자신의 삶을 위한 훌륭한 관리자가 된다.”
유족은 부인인 수필가 정상욱 여사, 아들 진엽 서울대 미학과 교수와 진황 현대고 교사, 딸 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25일 오전 9시 서강대 성당. 02-2072-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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