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지원 활동에 힘쓰고 각종 사회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천주교 인천교구장 최기산 보니파시오 주교(사진)가 30일 오전 11시 40분 선종(善終)했다. 향년 68세.
경기 김포 태생인 고인은 1975년 가톨릭대 신학대를 졸업하고 사제품을 받은 뒤 부평1동본당 보좌로 사목 활동을 시작했다. 인천가톨릭대 교수를 지냈고 1999년 인천교구 부교구장으로 임명돼 주교품을 받았다.
2002년부터 제2대 인천교구장으로 일하며 북한에 기초 의약품과 쌀, 옥수수 등을 보내는 인도적 지원 사업에 앞장섰다. 새터민에게 장학금을 지급해 의사, 한의사의 탄생을 돕는 등 이들의 정착 지원에도 적극적이었다. 재임 중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인천가톨릭대 조형예술대와 간호대를 설립했다.
2004년부터 6년 동안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으로 일했다. 당시 위원회 총무로 함께 일한 박정우 신부는 “최 주교님은 온화하고, 합리적이고, 따뜻했던 분이었지만 용산 참사나 제주 해군기지 문제를 비롯해 교회의 입장에서 정의와 약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메시지가 필요할 때 적극적으로 소임을 다하셨다”고 회고했다.
2002∼2007년 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 위원을 지냈으며 주교회의 교육위원장과 성직주교위원장, 상임위원, 서기로도 일했다.
주교가 되기 전 김포·해안·심곡1동·산곡3동 성당 주임, 인천교구 사목국장으로 일하던 시절에는 ‘강론 잘하는 신부’로 이름이 났다. ‘보다 나은 주일 설교를 위한 제언’ ‘효과적인 어린이 설교를 위한 제언’ 등의 논문과 ‘말 잘하는 신부이야기’ ‘하느님을 향하여’ ‘설교준비법’ ‘어린이 강론집’ 등의 저서를 남겼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은 이날 애도 메시지에서 “최 주교님은 사목 활동에 열정을 다하고, 소탈한 성품으로 신자들에 지극한 사랑을 전하던 착한 목자이셨다”며 “주님께서 최 주교님을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받아주시도록 기도한다”고 밝혔다.
빈소는 인천 중구 주교좌 답동성당(032-762-7613), 장례미사는 6월 2일 오전 10시 반 천주교주교단과 교구 사제단 공동 집전으로 열린다. 장지는 교구 하늘의 문 묘원 성직자 묘역이다. 문의는 인천교구 사무처(032-765-6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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