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시인이자 영문학자인 김종길(본명 김치규·사진) 고려대 영문과 명예교수가 1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1세. 고인은 지난달 21일 부인 강신향 씨가 세상을 떠나자 그 충격으로 힘들어했다고 유족들이 전했다.
1926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시인은 194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입선하며 등단했다.
영문학자로서 고려대에 34년간 재직하며 현대 영미시와 시론을 국내에 소개하는 한편 한시(漢詩)와 김춘수 박두진의 현대시를 영어로 번역해 영미권에 알렸다. 시 창작과 평론, 영문학 연구, 번역을 넘나들며 학계와 문단 양쪽에서 활약했다. 한국시인협회장, 한국T.S.엘리엇학회 회장, 대한민국예술원 부회장을 지냈고 인촌상 목월문학상 청마문학상 육사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국민훈장 동백장과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그의 시세계는 서양의 이미지즘을 연상시키면서도 이를 뛰어넘어 옛 우리 시가 지닌 단아한 아름다움의 전통을 이었다는 평을 받는다. 문학평론가 유종호 씨는 그의 작품에 대해 “서양의 양질의 것이 얼마나 볼품 있게 동양적인 것에 접합될 수 있는가를 보여줬다”고 평했다. 한 해에 두세 편의 시를 쓰는 해가 많았을 만큼 과작(寡作)의 시인이기도 했다. “어설픈 시를 내놓을 수 없다”는 창작 자세 때문이었다.
시집으로 ‘하회에서’(1977년) ‘황사현상’(1986년) ‘천지현황’(1991년) ‘달맞이 꽃’(1997년) ‘해가 많이 짧아졌다’(2004년) ‘해거름 이삭줍기’(2008년) ‘그것들’(2011년) 등이 있고, 시론집으로는 ‘진실과 언어’(1974년) ‘시에 대하여’(1986년) 등이 있다.
1969년 출간한 고인의 첫 시집 제목이자 대표작인 ‘성탄제’는 여전히 널리 읽힌다.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유족으로 선국(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선민(숙명여대 일본학과 교수) 선경 선형 선숙 씨 등 2남 3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 고려대 안암병원, 발인은 4일 오전 8시 30분. 02-923-4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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