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빈소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은 조문을 마치고 빈소를 나오면서 방명록에 이렇게 적었다. 이날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의 빈소를 지킨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91)도 “27년이나 일본대사관 앞에서 얼마나 서럽게 외쳤겠냐. 하늘나라로 아픈데 없이 훨훨 날아가서 우리를 도와 달라”고 했다.
평생의 소원이었던 ‘일본의 공식 사과’를 끝내 받아내지 못한 채 28일 눈을 감은 김 할머니의 생전 절규를 다독이듯 두 사람은 모두 ‘훨훨 날아’ 편안한 곳으로 가기를 바랐다.
김 할머니 곁을 마지막까지 지켰던 정의기억연대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 할머니는 기력이 다해 숨지기 몇 시간 전까지도 일본에 대해 절규에 가까운 강한 분노를 표현했다고 한다.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는 “할머니는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로 사력을 다해 말했다”고 전했다.
김 할머니는 매주 수요일마다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민들과 함께 일본 정부의 사죄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왔다. 2017년 대장암 판정을 받고 투병 생활을 하는 중에도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요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김 할머니는 1992년 3월 위안부 피해 사실을 외부에 알리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같은 해 8월 제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와 1993년 유엔 인권위원회가 개최한 오스트리아 빈 세계인권대회에서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2012년 3월에는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나비기금’을 설립했다. 김 할머니는 전쟁지역 아이들과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을 내놓았고, 2017년에는 경북 포항 지진 피해자들을 위해 성금을 전달하는 등 국적을 가리지 않고 어려운 환경에 놓인 사람들을 도왔다. 김 할머니는 눈을 감던 날 아침에도 “조선학교 아이들이 잘 지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29일 김 할머니의 빈소에는 지인들과 각계 인사, 교복을 입은 학생 등 시민들의 추모 발길이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침통한 표정으로 30분가량 조문했다. 문 대통령은 “조금만 더 사셨으면 3·1절 100주년도 보시고 북-미 정상회담이 열려서 평양도 다녀오실 수 있었을 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김 할머니는 생전에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이 오면 금으로 된 도장을 만들어 주겠다. ‘김정은’이라고 새겨진 그 금도장으로 통일문서를 찍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휠체어를 타고 온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91)는 김 할머니의 영정 사진을 5분간 물끄러미 바라보며 눈물을 훔쳤다. 김 할머니를 실제 모델로 삼아 만든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주연을 맡았던 영화배우 나문희 씨(78)도 이날 빈소를 찾아 김 할머니의 영면을 애도했다.
김 할머니의 장례는 여성 인권운동가 김복동 시민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2월 1일 오전 6시 30분에 열린다. 이어 오전 8시 반에는 서울광장에서 일본대사관 앞까지 행진하는 노제가 열리고 오전 10시 반 일본대사관 앞에서 영결식이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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