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 기자의 談담]남산의 소나무, 샹보르의 소나무… “문화는 섞어야 발전합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일 03시 00분


샹보르 城에서 ‘韓佛 교류의 해’ 소나무 사진전 열고 있는 배병우 씨

《 한국과 프랑스는 내년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2015∼2016년 ‘한불 상호 교류의 해’ 행사들을 연다. ‘프랑스 내 한국의 해’가 올해 9월부터 내년 8월까지, ‘한국 내 프랑스의 해’ 행사가 내년 1월부터 1년간 계속된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도 이를 계기로 처음 방한해 4일 한-프랑스 정상회담을 갖는다. 프랑스 내 한국의 해 행사 중 하나는 30여 년 몰두해 온 소나무 사진으로 유명한 배병우 씨(65)의 사진전이다. 그는 9월 26일부터 프랑스 루아르 지역의 유서 깊은 고성(古城)인 샹보르 성에서 ‘숲 속으로(D’une for^et l’autre)’ 전시를 열고 있다. 샹보르 성 측은 그가 찍은 경북 경주 남산과 프랑스 샹보르 숲 사진 59점을 내년 4월 10일까지 성 내부에 전시한다. 그를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

10월월 27일 서울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유명 사진가 배병우 씨는 “프랑스 사람들이 한지에 인화한 숲 사진을 좋아하듯, 한국과 프랑스가 교류하면서 서로를 발전시키자고 말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10월월 27일 서울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유명 사진가 배병우 씨는 “프랑스 사람들이 한지에 인화한 숲 사진을 좋아하듯, 한국과 프랑스가 교류하면서 서로를 발전시키자고 말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한불 130주년 사진전
김선미 기자
김선미 기자


―어떻게 준비했나요.


“샹보르 성 큐레이터로부터 전시 제안을 받고 1년여 동안 샹보르 성과 경주를 오가면서 사진들을 새로 찍었습니다. 성 측은 성채 내의 작가 숙소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내주었어요. 파리 면적만큼 넓고 늪지대가 많은 샹보르 숲을 찍는 데 필요할 거라면서요.”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프랑스 루아르 계곡에 있는 여러 고성 중 하나인 샹보르 성은 프랑수아 1세가 1515년 건립을 지시해 루이 14세가 완공했다. 그 성을 찾는 하루 평균 6000여 명의 방문객이 요즘 배 씨의 사진을 관람하고 있는 것이다.

―현지 반응은 어떤가요.

“프랑스 관람객들이 제 샹보르 숲 사진을 보고 한국의 숲 사진인 줄 알았다고 합니다. 몇몇 사진을 한지에 인화했더니 굉장히 좋아하더라고요. 동양 수묵화 같다면서.”

―서양 평론가들이 배병우 사진은 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어 다비트 프리드리히(1774∼1840) 그림과 유사하다고 하던데요.

“한국 사람들은 저를 사진에 가둬서만 설명하는 데 반해 서양 사람들은 현대미술 전반에 동양 전통을 아울러 제 사진을 설명합니다. 미술에 해박한 사람들이 많아서인가 봐요. 일례로 장 오송빌 샹보르 성 대표는 19세기 프랑스 고전파 화가인 장오귀스트도미니크 앵그르의 유명한 그림 속 인물 ‘오송빌 부인’의 손자더라고요. 엘리트 공무원 출신인데, 예술적 배경도 있습디다.”

―프랑스와 한국의 문화적 토양 차이를 느끼나요.

“우린 단숨에 오느라 현대예술의 전통이 짧잖아요. 나무는 100년이 돼야 나무 같아요. 최근 스페인 북부 소리아 지방의 국립공원에 갔더니 해발 2000m에 100∼500년 된 소나무 숲이 있더라고요. 한국의 소나무는 대부분 100년이 안 됐는데….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벚나무가 속성수예요. 100년이 전성기거든요. 30년 후쯤이면 우리나라 벚나무가 일본보다 멋있을 거예요. 경남 하동 섬진강변 벚나무가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나무를 잘 기르면 되는 거지 ‘벚나무는 일본 나무’라고 백안시할 필요까진 없지 않을까요. 그게 문화적 성숙도라고 생각해요. 우리도 문화적으로 100년이 되면 성숙된 힘을 가질 겁니다. 우리가 본격적으로 경제개발에 나선 지 지금까지 50년 됐다고 보고 앞으로 50년 노력하면 되지 않겠어요. 문화적 힘이 생겨야 다양한 예술가와 문화가 탄생합니다.”

―다른 ‘프랑스 내 한국의 해’ 행사도 보셨나요.

“파리 국립장식미술관에서 시작된 ‘코리아 나우(Korea Now)’ 전시(9월 18일∼2016년 1월 3일) 개막식에 갔더니 제 홍익대 응용미술과 70학번 동기인 최병훈(홍익대 목조형가구학과 교수)과 안상수(파주 타이포그라피학교장)가 전시자로 참석했더라고요. 관람객이 넘치는 국립장식미술관에서 한국 전시가 열리는 게 뿌듯했습니다. 과거 한국은 삼성 LG와 같은 기업 이미지가 우선했는데, 이젠 문화 이미지 시대가 열리고 있어요.”

○ 한국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최근 조성진 씨의 쇼팽 콩쿠르 우승 등으로 한국을 보는 프랑스의 시선이 달라졌나요.


“전문가 사회에서 변화하는 시선이 느껴져요. 이번에 샹보르 성에서 전시하니까 파리 미술계 인사들로부터 스타 대접을 받았어요. 조성진 씨 우승 덕도 본 셈이죠. 그동안 케이팝이 한국 문화를 알렸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스포츠 문학 미술 클래식음악 등 여러 분야가 ‘으싸으싸’하는 힘으로 새로운 것과 전통을 서로 주고받아야 발전하죠. 한-프랑스 교류가 그 바탕을 다지는 모멘텀이 됐으면 합니다. 조성진 씨가 다니는 파리 국립고등음악원도 이번에 함께 떴잖아요. 우리로 인해 파리가 다시 문화적 융성기를 맞을 수도 있죠.”

―프랑스 샤토 무통 로칠드 와인도 최근 2013년 빈티지 와인 라벨에 한국 아티스트로는 처음으로 이우환 화백 그림을 넣기로 했습니다.


“파블로 피카소 등 대가들의 작품만 들어가던 라벨이었으니 정말 대단한 일이죠. 미술계의 변방이던 한국이 요즘 ‘되는 느낌’이에요. 저도 11월 12일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리는 세계적 사진전 ‘파리 포토’에서 ‘살롱 도뇌르(귀빈실)’ 전시를 하게 됐어요. 주변에서 이 전시가 사진계의 ‘명예의 전당’인 셈이라고 하더라고요.”

배병우 씨가 찍은 프랑스 샹보르 숲 사진(왼쪽)과 배 씨의 작품들이 전시된 샹보르 성 내부. 배병우 씨 제공
배병우 씨가 찍은 프랑스 샹보르 숲 사진(왼쪽)과 배 씨의 작품들이 전시된 샹보르 성 내부. 배병우 씨 제공
○ “문화는 섞어찌개 형태로 발전한다”

―중도좌파의 사회당 올랑드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우파 대통령 시절과 비교해 프랑스 예술계에 미치는 영향은 없나요.

“국가 정책의 영향이 있죠. 파리는 더 이상 현대예술의 중심이 아니에요. 부자에 대한 세금을 늘리니까 ‘큰손’들이 인접 나라들로 떠났거든요. 그러면 예술은 죽어요. ‘분배의 정의’와는 별개로 예술 작품은 아무래도 부자가 사는 거거든요.”

―어떻게 해야 예술이 살아날까요.

“사람을 모여들게 해야죠. 요즘 파리엔 하다못해 술주정뱅이도 잘 안 보여요. 오히려 서울 홍익대 앞이 밤새 시끌벅적하죠. 도시는 그래야 창조를 담을 수 있어요. ‘에콜 드 파리’(파리학파·제1차 세계대전 이후 파리로 이주해 온 외국인 화가 집단)가 생겨났던 게 정부가 나서서 ‘자, 여기 에콜 드 파리입니다. 모여주세요’ 해서 된 게 아니잖아요. 돈이 곧 예술로 직결되는 건 아니지만 경제적 여건이 예술에는 중요합니다. 요즘 영국 런던은 부자가 많이 와서 작품을 사기 때문에, 독일 베를린은 물가와 월세가 싸서 아티스트가 모여요. 이럴 때 중요한 게 나라의 경제력을 살리는 것, 아티스트가 살 길을 현실적으로 마련해 주는 거예요. 문화는 ‘섞어찌개’ 하면서 발전하는 거니까요.”

―섞어찌개라…. 재밌네요.

“제가 전시하면 각국의 아티스트와 사진가들이 모이잖아요. 그렇게 자주 만나다 보면 결혼해 아이 낳고 사는 남녀 예술가도 생기고, 한마디로 드라마가 탄생하죠. 작년에 프랑스 쇼몽 성(城)이 초청해서 ‘경주의 소나무’ 전시를 했는데, 그곳 아트 디렉터가 말하더라고요. ‘10년 전에 당신의 사진을 러시아 예르미타시(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유심히 봤었다’고. 그렇게 인연들이 꼬리를 물어 제가 해외시장에서 이름을 알리게 됐고, 살아남은 것 같아요.”

○ “자연은 상상력의 공간으로 남겨둬야”

―제주의 오름, 섬도 찍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배병우는 소나무’로 보는 것 같습니다.

“소장가들은 아무래도 소나무를 선호하네요. 사실 전 바다 시리즈를 좋아하는데….”

―배병우 소나무 에디션이 흔해졌다는 말도 들립니다.

“작품은 깔릴수록 좋아요. 피카소가 일생 동안 어마어마한 양의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전 세계 미술관에 깔린 거예요. 예술도 양이 뒷받침돼야 해요.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려면 작품이 수천 개는 있어야 하죠.”

―인물사진 의뢰도 받을 것 같은데요.

“예전에 재계 인사로부터 제안받은 적이 있지만 거절했습니다. 냉면집(자연사진) 하다가 불고기집(인물사진) 할 생각이 없어요. 젊은 사람들도 한 우물을 팠으면 해요.”

―아날로그 방식으로 촬영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요즘은 디지털 시대 아닌가요.

“대세는 디지털이죠. 그런데 작년에 영국 빅토리아앨버트 미술관이 제 사진을 소장용으로 두 점 사면서 옛날 아날로그 방식으로만 작업해 달라고 하더라고요. 디지털은 잘못하면 싸구려 느낌이 나요. 아날로그 방식은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자연의 숨결을 나타낼 수 있죠.”

―하루 일과는 어떻습니까.

“아침에 일찍 일어나요. 하루가 길어지니까요. 예술가들은 게으를 것 같지만 실은 부지런한 사람만 살아남아요. 엊그제 이른 새벽 추자도 절벽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니 그게 살아 있는 것이더라고요.”

―살아 있음을 느끼는 또 다른 순간들이 있나요.

“아침에 숲 속에서 눈을 뜰 때, 카메라를 들고 숲과 바다를 거닐 때.”

―역시 자연이군요.

“제주는 해안일주도로가 없던 때가 전성기였어요. 경주 월성에 가보면 나무에 변압기를 달아놓고 조명으로 써요. ‘발굴병’, ‘개발병’에 걸린 것 같아요. 곧 화(禍)로 돌아올 거예요. 자연은 상상력의 공간으로 남겨 놓아야 해요. 귀중한 자연을 아무 근거 없이 고치고 개발하는 일은 이제라도 막아야 해요.”

어제 안부 문자를 보냈더니 평소 홍길동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그는 카메라를 들고 경주에 갔다면서 새벽 감포 해변의 사진을 휴대전화로 보내 왔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배병우#소나무#한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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