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내생각 ▼
샤워 후 배수구에 엉겨붙은 머리카락을 주워 욕조 옆에 놓아두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곧바로 휴지통에 넣으면 되는 것 아녜요. 나중에 마른 비누때가 덕지덕지 붙은 머리카락 뭉치를 손으로 집어낼 땐 아무리 남편 것이라 해도 정말 역겨워요.
세수한 뒤 세면대를 한번만 물로 씻어주면 물때가 생길 이유가 없는데, 10초도 안걸리는 일을 왜 안하는지 모르겠어요. 치약사용도 문제예요. 이왕 쓰는 것 튜브 끝부터 짜면 될 걸 왜 중간부터 눌러쓰는지.
제가 바라는 건 크게 힘들거나 시간이 걸리는 일이 아녜요. 아주 작은 신경만 쓰면 되는 일이지요. 부부도 공동생활이라고 생각해요. 벗은 속옷을 욕실 옆에 팽개쳐 놓는 경우가 많아 손님이 올 때마다 일일이 먼저 확인해야 하고요.
신혼초에는 남편에게 얘기도 많이 했어요. 그때마다 남편은 “으응, 알았어”하면서 마지못해 하는 눈칩디다. 때론 남편이 ‘이 여자가 나와 결혼한 것을 후회하는구나’하는 것 같은 표정을 지을 때가 있어 오히려 내가 신경이 쓰여 포기하고 맙니다.
심미경<33·전업주부 고양시 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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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생각 ▼
아침 6시에 일어나 7시면 출근길에 나섭니다. 그 1시간 동안 신문보랴 화장실가랴 샤워하랴 밥먹고 옷입으랴, 정말 눈코 뜰 새 없어요. 특히 요즘처럼 IMF한파로 금융계가 위기를 맞고 있을 땐 조간신문 경제면을 살피느라 1시간도 모자랄 지경입니다.
제가 아내의 불만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저도 제 행동이 잘 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주 잊어버릴 뿐입니다. ‘꼭 버려야지…’하고 머리카락을 한편에 모아둔 후에도 곧잘 잊고 출근하곤 합니다.
하지만 아내가 너무 과민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치약의 경우 어느 부위를 짜든 나중에 다 쓸 무렵 밀어올려 쓰면 그만 아닙니까.
수건을 펴서 걸지 않아도 또 뭐라고 하고…. 부부생활은 연애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긴장 속에서 살 수 있는 게 아니죠. 상대방의 안좋은 면도 때로는 눈감아줄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촌각을 다투는 남편의 삶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준다면 출근 뒤 칠칠치 못한 남편의 뒤처리를 해주면서도 아내가 사랑으로 가볍게 웃음지어 줄 수 있기를 바라는 건 억지일까요.
조정훈<35·장기신용은행 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