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문(32·전업주부 고양시행신동)
친구 소개팅에 따라나갔다가 친구 대신 눈이 맞아 경석씨와 결혼한 지 벌써 3년. 그새 예쁜 딸 소현(16개월)이도 얻었어요. 결혼과 함께 직장을 그만뒀고 남편은 공부에 매달려 있어 시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생활하고 있지요. 검약습관이 몸에 배어서 큰 지장은 없지만 한가지 불만은 있어요.
94년말 결혼하고 3주쯤 지났을 때였어요. 자정이 넘어 술을 마신 경석씨가 대학원 후배들을 데리고 집에 들이닥쳤어요. 한번으로 끝나질 않더라고요.
신혼초에는 1주일에 한두번씩 선후배들이 찾아왔어요. 갑작스러운 방문에 대비해 맥주와 라면을 박스째 들여놨죠. 전공공부며 신변잡기 이야기로 밤을 지새는 모습이 보기좋아 맥주잔을 기울이며 함께 어울리기도 했어요.
아기를 갖게 되면서 조금씩 짜증을 냈어요. 조금 줄어들데요. 그러더니 아이를 낳고 난 뒤부터 슬슬 한달에 한두번 또 사람을 데리고 오네요. 아기 돌보느라 힘이 들어선지 전처럼 즐겁지만은 않아요. 게다가 미리 전화를 안하는데는 정말 화가 나요. 공부하는 사람들끼리 끈끈한 정 중요하겠죠. 하지만 이제는 좀 계획있는 생활을 해야 하지 않겠어요.
▼ 남편 생각 ▼
박경석(33·연세대학원 사학과 박사과정)
짧지 않은 기간 제 공부 뒷바라지 하느라 힘든 아내에게 늘 감사해요. 이제 5학기째. 앞으로도 3년은 더해야 중국사 박사과정이 끝납니다. 간간이 시간강사로 나가봐야 용돈벌이 정도니 집사람 고생이 오죽하겠어요.
선배나 후배를 집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미안하죠. 하지만 나름대로 이유는 있습니다. 한달에 책값을 포함해 용돈 30만원. 어쩌다 소주 한잔 사기도 벅찹니다. 부족한 ‘술배’를 채우면서 돈도 절약하고 선후배간의 정을 나누는데는 집만한 곳이 없어요. 한학교에서 공부하는 사람끼리 맺은 인간관계가 나중에 서로의 학문을 잇는 중요한 가교가 되기도 하고요. 꼭 계획을 세워 마시는 것이 아니다보니 미리 연락하기도 힘들죠. 중국인의 관용정신이 잦은 이민족의 유입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사람이 있어요. 부부관계나 가족도 비슷해요. 다소 불편해도 친구나 후배같은 ‘이질적 요소’가 조금씩 끼여드는 것은 가정의 활력소가 된다고 생각해요. 아내의 친구가 우리 집을 찾는 것도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조만간 1,2년 정도 중국에 가서 연구를 해야 합니다. 선후배와 어울릴 시간도 많지 않아요. 조금만 더 참아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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