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진(31·옷가게운영·경기 군포시)
대입 학력고사를 본 뒤 선배들이 주선한 미팅에서 형렬씨를 만나 94년 3월 결혼했죠. 아직 남편이나 저나 아기를 낳을 생각이 없어 단출히 둘만 살고 있어요.
남편은 대학시절부터 컴퓨터에 ‘미쳐’ 살았고 지금도 관련업계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서울 봉천동에서 작은 옷가게를 꾸려오고 있죠.
형렬씨는 오후 10시에 퇴근하는 저보다 대부분 일찍 들어와요. 그런데 집에 와보면 항상 컴퓨터 앞에 붙어있는 거예요. 밖에서 하루종일 컴퓨터를 만지고도 부족한가 봐요.
잠자리에 드는 자정이나 오전 1시까지 PC통신과 인터넷 안에서 시간을 보내요. 주말에도 마찬가지죠. 쉬는 토요일이나 일요일이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컴퓨터부터 켜고 하루종일 통신을 하기 일쑤죠.
가끔은 PC통신으로 ‘채팅’도 하나봐요. 한번은 옆에서 보니 웬 여자랑 “지금 뭐하세요” “잘 지내냐”며 아는 척하고 있더라고요. 저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인간관계라는 것이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집에 들어와 있는 시간만이라도 서로에게 충실했으면 좋겠어요. 20∼30분이라면 몰라도 너무한 것 아니에요?
▼ 남편 ▼
김형렬(31·나모인터액티브 과장)
91년 PC통신을 시작한 ‘통신 1세대’입니다. 아내와 사귄 시간만큼이나 긴 시간 컴퓨터와 인연을 맺어왔죠.
PC통신을 통해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PC통신과 컴퓨터 활용은 제 삶의 중요한 부분이자 취미기도 해요.
인터넷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회사에 있다 보니 직장에서 하루종일 컴퓨터를 만집니다.
하지만 직장에서 컴퓨터로 개인적인 업무를 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몰래 채팅하는 ‘몰팅’이나 개인의 E메일을 확인하는 것은 회사일과는 별개니까요.
그래서 집에 오면 컴퓨터부터 켜게 돼요. 신문읽기 은행업무 쇼핑까지 PC로 하거든요. 집에서 PC를 즐기는 것이 책을 읽거나 비디오를 보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영화 ‘접속’을 보고 난 뒤부터 아내가 부쩍 PC통신에서 여자를 사귈까봐 걱정하는 것 같은데 괜한 염려입니다. 경력이 경력인 만큼 사이버 공간에서의 인간관계에 대해 나름대로 터득한 바가 있거든요.
가정은 직장에서 못한 개인적인 일들을 해결하는 공간. 아내와의 대화시간을 늘리려고 노력하겠지만 PC와의 관계를 ‘시샘’하지는 말았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