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紙上 배심원평결]시댁가면 달라지는 남편

  • 입력 1998년 8월 26일 19시 53분


▼ 아내 생각 ▼

김영리(29·주부·서울 구로구 오류동)

연애시절 매일밤 삐삐 음성사서함에 ‘사랑해’ 메시지를 남기던 남편. 결혼 후에도 잘합니다. 밤에 들어올 때면 과일이나 만두, 떡볶이를 사오기도 하고 주말이면 화장실청소, 쓰레기 버리기를 도맡아 해요. 아침에 마땅한 국거리가 없을 때 남편이 만드는 ‘계란찜’은 별미죠.

이런 남편이 주말에 시댁에만 가면 ‘행동’과 ‘말투’가 확 달라지는 거예요. 둘이 있을 때는 특별히 “뭐 먹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던 남편이 시댁에만 가면 먹고 싶은 게 뭐 그리 많은지. 내가 고기를 굽고, 옥상에서 기르는 상추와 고추를 따고…. 남편은 ‘29년 동안 왕으로 앉아 지내던 자리’였다는 거실 소파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거예요.

남편은 시댁에 가면 3시간 동안 낮잠을 즐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친정에서 제가 낮잠을 자려하면 5분도 안돼 “자기 자? 빨리 나와봐”라며 안절부절 못하지요. 막내사위라 쑥쓰러워하는 남편을 제가 열심히 챙겨줍니다.

결혼이란 지금까지의 생활습관을 버리고 둘만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남편은 시댁에 가더라도 예전 생활로 돌아갈 것이 아니라 평소 저를 생각하던 마음씨를 그대로 지녔으면 합니다.

▼ 남편 생각 ▼

이규상(29·LG EDS 시스템 엔지니어)

퇴근 후 피곤하지만 사랑스런 아내가 혼자서 힘들게 집안일을 하는 것은 볼 수 없습니다. 아내가 직장에 다니지 않지만 제가 집안 일을 도와주는 것은 ‘서로가 함께 하기’ 위해서죠. 아내는 제가 집에서 TV를 보며 쉬고 있을 때면 “이것 좀 사다달라” “저것 좀 도와달라”며 끊임없이 요구합니다. 그러다보니 쉽게 ‘뭐 좀 먹고 싶다’는 말을 하기란 어렵습니다. 재료를 사오거나 같이 일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모님댁에 가면 상황은 달라지죠. 아버님 어머님이 앞에 계신데 제 아내만 고생한다고 챙겨주는 것은 왠지 예의에 어긋나기도 하고 쑥스러운 느낌도 듭니다. 평생 집안 일이라고는 해보신 적이 없는 아버님께서는 신세대 부부가 함께 집안일을 하는 것을 잘 이해하시지 못하기 때문이죠. 둘만 있을 때처럼 제가 주방에서 설겆이를 도와주는 모습을 보면 부모님은 속상해하실 겁니다.

명절이나 집안의 큰 일이 있을 때면 남자는 남자끼리 지내고, 여자는 여자끼리 일하게 돼 아내에 신경을 못쓰게돼 미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모세대와 우리세대의 생활방식이 다른 이상 부모님댁에 갔을 때는 당신들에게 자연스럽게 비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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