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대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한국정치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TV토론이 정치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까. 아쉽게도 국내에는 TV정치에 대한 연구서적이 단 한 권도 없다. 아마도 TV정치의 역사가 얕다보니 그랬을 것이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으로 글래디스 랭과 커트 랭 부부가 함께 쓴 ‘TV와 정치’가 번역본으로 나와 있다. 미디어정치를 연구하는데 귀감이 될 정도로 TV와 정치의 관계를 꼼꼼하게 분석하고 있다. 다양한 설문조사와 실험을 통해 미시적으로 분석하기도 하고 TV정치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거시적인 설명도 있다.
TV정치의 사례로 △51년 트루먼대통령에게 해임돼 귀국한 맥아더장군의 환영행사 △52년 공화당과 민주당 전당대회 △60년 케네디와 닉슨의 TV토론 △64년 미국 동부지역 투표결과 방송이 서부에 미친 영향 △카터와 포드의 TV토론 등 여섯 가지를 들고 있다.
‘맥아더의 날’환영행사 분석을 통해 ‘TV적 현실’과 그것에 의해 이뤄진 ‘만들어진 현실’사이에 깊은 상호작용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TV는 현실을 굴절된 이미지로 전달한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유능한 토론자이자 TV정치인으로 알려진 닉슨이 신출내기 정치인 케네디에게 진 것은 TV토론에서 졌기 때문이었다. 닉슨은 용모에 신경을 쓰지 못했고 피곤한 표정을 보인 반면 케네디는 매력적이고 세련된 토론매너를 보였던 것이다.
우리에게도 TV정치가 몰려오고 있다. 아니 이미 TV정치는 하나의 현실이 되었다. 청문회는 이미 짧은 시간에 유명한 정치적 스타들을 배출하였고 TV정치토론은 고난도의 정치게임으로서 시청자들에게는 흥미진진한 볼거리로 자리잡고 있다.
정치 고수(高手)에게 TV는 생존게임의 영역이 되고 있다. 그 사이에도 TV정치에 적응하지 못한 다수의 정치인이 도태되거나 혹은 일선에서 물러나 재출연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이렇듯 TV정치는 문화적 제도적 충격을 수반한 정치문화의 변동을 뜻한다. TV정치시대를 맞아 그 영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그에 대한 감수성을 기르는 훈련이 필요하게 되었다.
TV정치의 장점은 비용이 절약된다는 점이다. 의사전달능력과 토론능력은 정치적 힘의 원천이 된다. 오죽하면 미국 최고의 TV정치인인 클린턴을 놓고 ‘베스트 커뮤니케이터’라고 부르겠는가.
그러나 TV정치는 오락의 영역을 동반한다. 따라서 이미지 정치, 영상정치, 탤런트정치시대가 본격화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이 자칫 잘못 운영될 경우에는 참여민주주의와 텔레데모크라시가 아니라 ‘TV 독재’와 유권자의 소외현상이 초래될 위험성도 있다.
유권자들이 참여하는 TV민주주의가 이루어지려면 무엇보다도 TV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과 이해가 필요하다.
김광식〈21세기 한국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