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공감백서 맞아, 맞아!]“실적이 호환마마보다 무서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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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사원들 생존 투쟁 백태

제약사 영업사원인 재혁은 ‘병원장님’을 대신해 사모님과 아들을 모시고 놀이공원에 간다. 억지웃음을 지으며 이곳저곳을 따라다니던 그는 음식을 들고 잽싸게 병원장 가족에게 달려간다. 해가 저물고 가족의 쇼핑까지 따라다닌 뒤에야 그날의 업무(?)가 끝난다. 집에 돌아오는 길, 동료와의 통화. “야, 나 진짜 이런 것까지 해야 돼?”

영화 ‘연가시’의 한 장면이다. 직장인들에게 ‘영업’은 영원한 ‘숙적(宿敵)’이다. 때로는 불법까지 저질러가며 영업활동을 펼친다. 단속이 강화되면 ‘불법’과 ‘합법’ 사이를 애매하게 넘나든다. 그렇지 않으면 직장에서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카드회사 영업사원은 “영업이란 단어가 ‘호환마마’보다 무섭다”고 답했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최근 기업 407곳을 대상으로 ‘올해 인력 구조조정 계획 여부’를 조사한 결과 18.9%가 ‘계획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들이 인력 구조조정 대상 1순위로 뽑은 직원은 ‘업무 성과가 부진한 직원’(46.8%)이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 ‘실적’은 곧 ‘생사’일 수밖에 없고 화살은 직장인에게 향하기 마련이다.

○ “돈 없다! 몸으로 때운다”…‘육체형’

국내 자동차 회사의 영업사원 이모 씨(28)는 ‘셔터맨’으로 불린다. 돈 잘 버는 아내를 만나 하루 종일 놀다 아내의 매장 문(셔터)을 내리는 ‘셔터맨’이 아니다. 문을 열고 닫는 이른 새벽과 늦은 밤에 잠재 고객들의 문을 여닫아주는 ‘고달픈’ 셔터맨이다. 이 씨는 매일 오전에 서울 노원구와 도봉구에 있는 시장으로 가 가게 20∼30곳의 매장 오픈을 도와줬다. 세 달 뒤, 그는 처음으로 ‘차’를 팔았다. 이 씨는 “몸으로 때우는 것도 힘들지만 더 고달픈 건 이 모든 것을 견디며 열심히 해도 실적이 오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 “없으면 내 돈으로라도 때워야지”…‘금전형’

최근 제약업계는 리베이트(상품을 구매한 사람에게 구매 금액의 일부를 되돌려주는 것)가 근절되면서 영업할 수 있는 수단은 줄어든 반면 영업 강도는 더 세졌다. 오래전부터 제약업계의 영업은 고되기로 잘 알려져 있다. 국내 한 제약사에서 6년째 영업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모 씨(33)는 최근 한 대형병원 의사의 기사 노릇을 하러 강원도 속초까지 갔다 낭패를 봤다. 교수가 억지로 술을 마시게 한 것이다. 결국 20만 원이 넘는 대리기사 비용을 본인이 냈다. 김 씨는 “약국을 담당했을 때는 약사들이 간혹 반 알 처방하고 반 알 남은 걸 환불요청 하면 그때마다 내 돈을 내야 했다”며 “리베이트 단속이 심해지자 영업사원들이 사비를 털고 있다”고 말했다.

○ ‘사돈에 팔촌까지!’…‘인맥형’


가장 흔하고도 사건 사고가 많은 건 ‘인맥형’이다. “부탁이다. 제발 만원만 ㅠㅠ” 은행원 이모 씨(29·여)는 친구들 사이에서 ‘만원만’으로 불린다. 가입 건수를 늘려야 하는데 재형저축 최소 가입금액이 1만 원이기 때문이다. 그는 가입할 때마다 ‘만원만 넣어 달라’라는 부탁을 해 ‘만원만’으로 불리게 됐다. 영업 대상은 다양하다. 친척은 기본이고 친척의 지인이나 동네 빵집 주인까지 대상이다. 상황이 어렵다 보니 경쟁사 직원과 거래하는 일도 있다. 국내 한 카드사 직원 박모 씨(27)는 다른 회사 카드 직원을 알게 돼 서로 거래를 했다. 카드를 한 장씩 만들어주는 것. 프로모션 실적은 무조건 신규 가입자만 해당되기 때문이다. 박 씨는 “이건 굉장히 고전적인 방식이다. 아무 은행에 들어가 ‘딜(거래)’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돌려 막기’ 방식도 있다. 먼저 지인들에게 신규 카드를 발급받도록 한 뒤 사용을 못하게 한다. 일정 기간 카드 사용 기록이 없으면 자동으로 휴면카드가 되기 때문이다. 휴면카드가 되면 새로 카드를 또 발급해 신규 가입자로 처리한다.

일부 기업은 치열한 업계 경쟁 때문에 영업부서가 아닌 타 부서 직원에게 영업을 시키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과도한 영업 경쟁이나 실적 압박이 자칫 애사심이나 회사 신뢰도를 낮출 수 있다고 지적한다. 검증되지 않은 직원이 영업 활동을 했을 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해 회사 신뢰도가 오히려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직장 문화 컨설팅 업체인 오피스N의 이윤진 팀장은 “실적이나 성과를 내라고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나치게 강요하거나 과도하게 요구할 경우 구성원들의 의지를 저하시킬 수 있고 급작스럽게 해당 직원이 퇴사를 하게 되면 회사 입장에서도 비효율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
#영업사원#실적#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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