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쓰는 선비론/정도전]정몽주와 정치적 적대관계

  • 입력 1997년 9월 9일 07시 57분


삼봉 정도전(三峰 鄭道傳)과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 이들은 어떤 관계일까. 위화도회군과 역성(易姓)혁명으로 새로운 왕조를 창건한 삼봉. 이에 맞서 고려수호의 절개를 지키려다 목숨을 잃은 비운의 인물 포은. 결론부터 말하면 이들은 서로 정치적 적대관계였지만 삼봉은 포은으로부터 학문적 영향을 받은 인물. 그러나 목은 이색(牧隱 李穡), 포은, 삼봉으로 이어온 여말선초(麗末鮮初) 성리학의 흐름이 두 사람의 정치적 대립관계에 의해 너무 가려져온 것이 사실이다. 분명 이들은 서로 적이었지만 삼봉이 주자학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이나 성리학의 이론적 틀을 완성한 것이나 모두 포은의 영향 아래서였다. 고려말 성리학의 이론적 탐구를 처음으로 시도해 불교와 유교의 사상적 차이를 지적한 인물은 정몽주. 그는 「동방이학지조(東方理學之祖)」라는 칭호를 들을 정도였다. 여말 공민왕 당시 성균관에서 반원(反元) 개혁 분위기를 바탕으로 성리학 등 폭넓은 학문을 익히던 삼봉은 포은의 주자학적 탁견을 자신만이 이해했다고 피력한 바도 있다. 포은을 통해 시문(詩文) 중심의 유학에서 사서(四書) 중심의 주자학으로 「개종(改宗)」한 삼봉. 포은의 학문적 성향을 계승한 삼봉에 이르러 성리학은 비로소 이론적 체계를 갖추게 됐고 삼봉의 개혁의지도 이 지점에서 출발한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까. 고려를 고집했던 정몽주의 성리학세계가 그를 타도하고 조선을 개국했던 정도전 사상의 뿌리 한부분을 이뤘다는 사실은. 〈이광표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