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쓰는 선비론/기대승]언론의 중요성 역설

  • 입력 1997년 11월 8일 09시 23분


낙향하는 퇴계(退溪)를 붙잡고 선조가 물었다. 『지금 나라 안의 학자중 누가 으뜸이오』 퇴계의 대답. 『기대승은 학식이 깊어 그와 견줄 자가 드문가 합니다. 내성(內省)하는 공부가 아쉽긴 하지만….』 내성이 부족하다 했다. 대의에 어긋나는 일은 그자리에서 용서하지 못했던 대쪽 기대승이었지만 그것이 지나쳐 번번이 마찰을 가져오고 그래서 아쉬움이 남는다는 말이리라. 「정즉일(正卽一·옳은 것은 하나밖에 없다)」이란 기대승의 신념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기대승은 이러한 면모에 걸맞게 「제왕학(帝王學)」을 내세워 명성을 날렸다. 명종 앞에서 펼쳤던 제왕학 내용을 보자. 첫째, 인간이 되어라. 「소학(小學)」을 읽고 인간의 바탕을 닦아야만 사람과 사물을 바로 볼 수 있고 나아가 부모의 마음을 잃지 않는 법이다. 둘째, 인재등용은 제왕의 지(智)와 덕(德)의 잣대이다. 모든 일을 혼자 한다는 독선을 버려라. 제왕이 아무리 잘해도 무능하고 부정한 관리를 만나면 일을 그르치는 법. 인재등용은 그래서 중요하다. 「조정은 일신(一身)과 같아 군주는 심신(心身)이요, 신하는 팔다리다. 팔다리는 심신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 그리고 심신은 이목구비(팔다리)의 감지에 따라 문제를 판단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명령을 내린다」. 이럴진대 팔다리를 뽑는 인재등용, 그보다 중요한 게 무엇이랴. 셋째, 언로(言路)를 뚫어라. 언로는 사람의 혈액과 같아 막히면 죽는다. 제왕의 눈과 귀는 그 언로를 향해 항상 맑게 열려있어야 하고 감지되는 바가 있으면 언제나 신속히 반응해야 한다. 제왕의 눈과 귀가 막혔을 때엔 사림(士林)이 목숨 걸고 그것을 뚫어야 한다. 대쪽 기대승. 하지만 그도 결국 부패의 무리들에게 겨누던 창을 내리고 고향으로 돌아서고 말았다. 진정한 독야청청(獨也靑靑)이었는지, 퇴계의 지적대로 「내성」의 부족 탓이었는지. 〈이광표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