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의 후유증, 붕당정치 등으로 나라가 휘청거렸던 17세기초. 인조(仁祖)는 널리 신하들의 의견을 구했다.
실학의 선구자 지봉 이수광은 장문의 「만언소(萬言疏)」를 지어 올렸다. 60대 원숙기에 접어든 그의 진면목이 잘 드러난 명문으로 중흥장소(中興章疏), 조진무실차자(條陳懋實箚子)라고도 한다. 특히 난세를 헤쳐나가기 위한 군주의 「12계율」이 유명하다.
▼근학(勤學)〓학문에 근면하라. 그리고 익힌 학문은 꼭 실천하라.
▼정심(正心)〓바른 마음을 갖고 백성의 모범이 되어라.
▼경천(敬天)〓천리(天理)를 지키고 하늘(천·天)을 공경하라. 사람은 곧 하늘이다. 바로 지봉의 천주사상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휼민(恤民)〓백성의 근심과 상처, 굶주림 재앙을 나의 것으로 생각하라. 백성은 군주의 하늘이기에.
▼납간정(納諫淨)〓천둥을 무서워하듯 간언(諫言)을 무섭게 여기고 언로를 열어놓아라.
▼진기강(振紀綱)〓국가 기강을 세워라. 국가기강은 사람의 원기와 같아 원기가 있으면 몸의 병이 치료되듯 기강이 있으면 국가는 문제될 것 없다.
▼주대신(住大臣)〓훌륭한 인재를 골라 그 인재에게 일을 맡겨야 한다. 뜬 소문으로 인재를 구하지 말라.
▼양현(養賢)〓현자(賢者)와 능자(能者)는 길러지는 것이다. 인재 양성은 곧 군주의 의무이다.
▼소붕당(消朋黨)〓붕당을 없애라. 붕당은 결국 국가에 엄청난 화를 가져온다.
▼식계비(飾戒備)〓평시에도 국방을 늦추지 말라.
▼후풍속(厚風俗)〓좋은 풍속을 잘 지켜 백성을 인도하라. 풍속이 후한지 박한지는 군주에 달려있다. 군주가 여색을 좋아하면 호색하는 신하만 따를 뿐.
▼명법제(明法制)〓좋은 법이 없으면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 인의(仁義)를 바탕으로 법을 만들되 세상이 달라지면 법도 바뀌어야 한다.
이 글을 본 인조는 『지봉의 마음을 따라 행하겠다』고 말했다 한다. 조선왕조실록도 이 만언소가 당대 제일의 답이라고 적고 있다.
〈이광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