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불후의 명작 「윤두서의 자화상」

  • 입력 1998년 2월 12일 08시 27분


한국 최고의 초상화로 평가받는 불후의 명작 ‘윤두서(1668∼1716)의 자화상(18세기초·국보240호·왼쪽)’. 이 그림은 매우 특이하다. 부리부리한 눈매, 거울을 보고 그린 듯 한올 한올 사실적이면서 불타오르는 수염. 넘치는 생동감과 파격적인 생략은 보는 이를 섬뜩한 공포로 몰아넣는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있어야 할 두 귀, 목과 상체가 없다는 점. 탕건 윗부분이 잘려나간 채 화폭 위쪽에 매달린 얼굴이 매섭게 노려보고 있다. 대체 이런 그림이 어떻게 나온 것인가. 윤두서가 일부러 그렇게 그린 것일까. 아니면 그의 실수 또는 그리다 만 미완성작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누군가가 조작한 것은 아닌지. 결론부터 말하면 안목 없는 후대의 어처구니 없는 실수 탓. 하지만 실수든 파격이든 그것이 작품의 예술성을 떨어뜨리지는 못한다. 이 그림은 조선시대의 유교윤리나 보편적 미감(美感)에서 벗어나 있다. 사대부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신체 일부를 떼낸 채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윤두서는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를 지은 윤선도의 증손자이자 실학자인 정약용의 외할아버지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바로 이 대목에 윤두서 자화상의 비밀이 숨어 있다. 이같은 의문을 품어온 오주석 한신대강사(한국회화사)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결정적인 자료 하나를 찾아냈다. 1937년 조선총독부가 펴낸 ‘조선사료집진속’. 거기엔 놀랍게도 목과 상체가 선명하게 남아있는 윤두서 자화상의 옛사진(오른쪽)이 들어있다. 그 사진 속에서 윤두서는 도포를 입고 있다. 단정하게 여민 옷깃과 정돈되고 완만한 옷주름, 어질고 기품있는 얼굴. 현존하는 자화상 실물(왼쪽)과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그러면 상반신 윤곽선은 어떻게 감쪽같이 없어진 것일까. 그 비밀의 열쇠는 상체를 그리는데 사용했던 유탄(柳炭). 버드나무 숯인 유탄은 스케치연필에 해당한다. 접착력이 약해 수정하기는 편하지만 대신 잘 지워지는 약점이 있어 조선시대엔 보통 밑그림용으로 사용됐다. 그래서 유탄으로 그린 상체는 지워지고 먹으로 그린 얼굴만 살아 남은 것이다. 오씨는 “윤두서가 미처 먹으로 상체의 선을 그리지 않아 작품이 미완성 상태로 후대에 전해오다 관리소홀로 지워진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언제인지 모르지만 아마도 미숙한 표구상이 구겨진 작품을 펴고 때를 빼는 과정에서 표면을 심하게 문질러 유탄 자국을 지워버리는 엄청난 사고를 저질렀을 것”으로 추정한다. 결국 윤두서의 자화상은 미완성작이었다. 두 귀가 빠진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예술성마저 미완성인 것은 아니다. 콧구멍 코털까지 그려낼 정도로 철저한 윤두서의 사실성을 오씨는 ‘성실성의 산물’이라 평가한다. “실물과 터럭 한올이라도 다르다면 그게 어찌 윤두서 자신의 얼굴이겠는가. 이 사실성은 그의 냉엄한 관찰에서 나온 것이며 그 관찰은 내면에 대한 치열한 성찰이자 선비 정신의 표출인 것이다.” 〈이광표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