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狂氣).조선시대에 가장 흐드러지게 광기를 보여준 화가가 있다면 단연 호생관 최북(毫生館 崔北·18세기)일 것이다.
그는 우선 호부터가 범상치 않다. 호생관, 글자 그대로 ‘붓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 뿐만 아니다. 그의 자(字)를 성기(聖器)라 지은 것이나 자신의 이름 북(北)자를 둘로 쪼개 칠칠(七七)이라 불렀던 것이 그렇다.
최칠칠, 지독히도 가난했던 그는 그림을 팔아 밥과 술을 구했다. 그 절박함은 자연스럽게 예술에 대한 집착과 광기로 이어졌고….
그는 스스로 자신의 눈을 찔러 애꾸가 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누군가 그의 그림 솜씨를 트집 잡자 이에 분노한 최북, “남이 나를 저버리느니 차라리 내가 나를 손대겠다”며 자신의 눈을 찔렀던 것이다. 불같은 성미, 예술가로서의 자존심과 광기가 뚝뚝 묻어나는 대목이다.
최북에겐 호탕한 면도 있었다. 금강산 구룡폭포에서 자연과 술에 한껏 취해 “천하 명인 최북이는 천하 명산에서 죽어야 한다”면서 몸을 던졌던 최북.그는 또한 매일 말 술을 마실 정도로 못말리는 주당이기도 했다.
최북의 예술적 광기는 죽음에서 절정을 이룬다. 언제 어디서 죽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술에 취한 겨울 어느날, 성벽 아래 잠들었다가 그만 폭설이 내려 얼어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천재 예술가의 비극적 종말이었다.
‘풍설야귀인(風雪夜歸人)’은 최북의 비극적 광기가 잘 드러난 작품. ‘눈보라 속에서 돌아온 사람’이란 제목과 전체적인 분위기가 낭만적이면서도 음산하다. 눈 속에서 죽어갈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것일까. 강풍에 지친듯 한쪽으로 휘어진 나무의 묵선(墨線)에 최북의 광기와 고집, 피곤한 삶이 흠씬 배어 있다.
‘달마도’의 김명국(金明國·1600∼1662 이후)과 장승업(張承業·1843∼1897)도 기행과 광기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조선 화가.모두 술 기운이 없으면 그림을 그리지 못했을만큼 천하의 술꾼이었다.김명국은 호가 취옹(醉翁)일 정도. 장승업은 여기에 여색(女色)이 하나 더 더해진다.
김명국의 독특한 작품 ‘투기도(鬪碁圖)’를 보자. 굳센 필력이 돋보이는 이 명품은 우선 내용이 독특하다. 욕심을 버렸을법한 두 노승이 바둑판을 옆에 두고 싸움을 벌이다니. 누군가 한 수 물려주지 않았는지 바둑판을 뒤엎고 상대방의 귀를 잡아당기며 한바탕 승강이를 벌이느라 정신이 없다. 동자는 그 옆에서 황망히 바둑알을 주워 담고…. 이 투기도는 비록 광기를 표현한 것은 아니지만 김명국의 괴팍함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작품이다.
기행과 광기의 천재화가 최북 김명국 장승업. 그들의 광기 어린 작품이 생각만큼 많이 남아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이야말로 당시 신분의 제약이나 사회통념에 얽매이지 않고 거침 없이 예술혼을 불살랐던 진정한 자유인이 아니었을까.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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