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것은 다산과 추사의 글씨체가 사뭇 대조적이라는 사실이다.
다산의 글씨는 단정하고 청아하다. 멋을 부린 듯하지만 법도를 벗어나지 않는다. 반면 추사의 글씨는 힘이 넘치고 그 안에 무언가 살아서 꿈틀거린다. 파격이다. 하지만 그 깊은 곳엔 은근한 질서가 숨어 있다. 다산의 해맑은 글씨와는 정반대다.
추사체(秋史體). 이 독특한 서체가 한국미술사에서 최고 품격의 글씨로 평가받는 까닭은 무엇인가. 대체 어떤 매력이 있는 것인가.
우선 우직한 힘과 솟구쳐오르는 생동감, 야성에 가까운 강렬한 개성, 대범한 역동성과 거침 없는 자유로움 등을 들 수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변화무쌍한 점 하나 획 하나, 직선과 곡선의 조화, 굵은 선과 가는 선의 극적인 대비, 좌우 불균형 속의 절묘한 균형, 필선(筆線) 농담(濃淡) 속도의 강약에 이르기까지. 거칠 것 하나 없는 무애(無碍)의 경지다. 거기에다 모질고 굳센 듯 하면서도 예스럽고 질박한 아름다움까지 담아냈으니.
추사체는 또한 치장하지 않고 시류의 속기(俗氣)를 모두 걸러낸 글씨다.그래서 현란하거나 화려하지 않다. 군더더기가 있을 리 없다.담담하면서도 깊이는 끝이 없다.
이것은 글씨 한 자에도 고결한 정신세계를 담고자 했던 추사의 강인한 의지의 결과다. “가슴 속에 청고고아(淸古高雅)한 뜻이 없으면 글씨가 나오지 아니한다. 문자향(文字香·문자의 향기)과 서권기(書券氣·서책의 기운)가 필요하다”고 했던 추사의 말처럼.
추사체에는 김정희의 시련의 세월이 고스란히 배어있기도 하다. 유배생활 도중 완성되었기 때문. 55세부터 8년간에 걸친 제주도 유배생활, 그 절대고독이라는 혹독한 시련을 글씨로 극복했던 것이다. 세상에 대한 분노와 원망도 예술로 승화되어 견인주의(堅忍主義)의 한 부분을 이뤘으니. 이때 함께 탄생한 그 유명한 ‘세한도(歲寒圖)’가 이를 잘 보여준다.
자신의 천재성을 바탕으로 중국의 모든 서체를 체득하고 혹독한 훈련을 거쳐 완성해낸 독특하고 독보적인 추사체. 한자의 본고장 중국의 서예가들도 감히 넘볼 수 없었던 추사체. 추사의 글씨 하나하나는 단순한 기교가 아니라 순결한 정신인 셈이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