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겸재 정선(謙齋 鄭敾·1676∼1759)의 ‘금강전도(金剛全圖·18세기·국보217호)’. 힘이 넘치는 필선(筆線), 독특하면서도 응집력 있는 구도가 돋보이는 이 그림은 우리 산천을 우리 시선으로 표현한 18세기 조선 ‘진경(眞景,실경·實景)산수화’의 대표작.
금강산을 원형으로 처리한 것부터가 매력적이고 심오하다. 왼쪽은 무성한 침엽수림이 어우러진 부드러운 토산(土山)이고 오른쪽은 화강암의 예리한 봉우리가 번득이는 골산(骨山)으로 각각 음과 양을 상징한다. 전체적으로는 좌우가 S자로 나뉘어 태극문양을 나타내는 등 음양오행 주역(周易)과 같은 철학적 원리를 담고 있다. 또한 우뚝 솟은 바위 봉우리는 우리 자연과 우리 정신의 당당함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이인문(李寅文·1745∼1821)의 ‘단발령망(斷髮嶺望)금강산(18세기말∼19세기초)’의 매력은 색다르다.단발령에 올라 금강산을 바라본다. 안개에 휩싸였는지,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금강산이 막 피어난 한송이 꽃처럼 아름답고 환상적이다. 단발령과 금강산 이외의 풍경을 생략해버린 절제와 파격,근경(近景)인 단발령과 원경(遠景)인 금강산의 조화, 산봉우리와 같은 부분적인 묘사보다 전체적 인상을 중시하는 넉넉함….
정선 화풍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정선과는 또다른 한국 산수화의 면모를 보여준다. 정선의 금강산이 꿈틀거리는 ‘힘’이라면 이인문의 금강산은 그 힘을 감싸주는 ‘여유’라 할 수 있다.
금강산이 우리 그림의 주된 소재로 등장한 것은 18세기 전후. 당시 중국풍의 관념적 산수화에서 벗어나 우리의 자연을 화폭에 담아야겠다는 자주적 문화분위기가 확산됐기 때문이다.
옛 선인들은 이처럼 금강산을 통해 자연과 역사를 배웠고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켜 다시 금강산을 통해 표출했으니. 조선시대 자신감의 원천, 그게 바로 금강산의 진면목이 아닐까.
정선의 ‘금강전도’는 현재 서울 호암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조선후기 국보전’에 출품, 전시중.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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