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으로 빚어 만든 토우(土偶·흙인형). 잡상(雜像)이다. 유몽인(柳夢寅·1559∼1623)의 야담집 ‘어우야담(於于野談)’에는 ‘신임 관료가 부임해 전임자에게 첫인사를 할 때 반드시 성문 문루(門樓) 위의 잡상 이름을 단숨에 외워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 잡상이 무엇이길래 옛사람들은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추녀마루에 잡상을 장식하고 또 그것을 줄줄 외었던 것일까.
잡상은 조선시대 궁궐의 전각(殿閣)이나 문루와 같이 큰 건축물에만 모습을 나타낸다. 잡상의 임무는 하늘에 떠도는 잡귀를 물리쳐 건물을 지키는 일. 궁궐이나 관아의 건물, 도성의 성문이야말로 왕조의 기강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잡귀를 막고자 했음은 당연한 일. 민간신앙의 하나인 셈이다.
그러면 잡상은 어떤 모습일까. 서유기에 나오는 삼장법사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등을 맨앞부터 순서대로 배치했다는 기록이 있긴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삼장법사를 닮은 사람이나 손오공을 연상시키는 원숭이는 등장하지만 저팔계 사오정은 보이지 않는다. 원숭이 사자 용 봉황 기린 해마(海馬) 물고기 해치 등의 동물이 별다른 원칙 없이 등장한다.
그러나 꼭 하나 지켰던 것은 맨앞엔 언제나 도인(道人) 선인(仙仁)과 같은 인물상이 자리잡는다는 점. 뒷자리 동물들을 이끄는 리더격이다. 그래서 이를 삼장법사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얼굴은 변형되어 마치 무사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잡귀를 물리쳐야 하니 그럴 수밖에.
잡상의 수는 5,7,9,11개 등 홀수. 왕과 관련된 건물은 주로 9개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잡귀를 막아내는 잡상이지만 모습은 익살스럽다. 먼발치에서도 사람에게 호기심과 흥미를 유발시켜주는 잡상. 그것은 기와지붕에 변화를 주고 추녀마루의 멋을 한껏 드높이는 하나의 액센트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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