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대묘 청룡벽화와 강서중묘 백호벽화(북한 남포시 소재)는 청룡 백호의 힘찬 비상을 예리하게 포착, 날렵하고 세련된 몸통 선에 고구려인의 호방한 기상을 잘 담아낸 걸작이다.
청자참외모양병(국보94호)은 곡선과 곡선의 만남을 통해 고려인들의 빼어난 미감을 잘 구현해낸 명품이다. 그 선은 단아하면서도 세련되고 한번 더 들여다보면 우아하고 고혹적이기까지 하다. 그렇기에 청자의 아름다움은 시대를 초월한다.
이것이 한국의 선이다. 한국의 선의 미학은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 청동기시대의 청동 잔무늬거울(국보141호)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잔무늬거울은 과감하면서도 탁월한 창의성과 디자인을 바탕으로, 직선과 원이 섬세하게 어우러진 미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 미는 다름아닌 추상의 미, 기하학의 미, 현대적 감각의 미다. 쉽게 만날 수 있는 한옥 문창살은 직선과 직선의 만남을 통해 은근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별다른 꾸밈을 가하지 않고도 저 딱딱한 직선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옛 장인들의 손맵시. 문창살은 평범한 사람들의 것이기에 더욱 각별하다.
여인네의 저고리는 전체적으로 곡선의 미를 보여주는 가운데 직선이 절묘하게 파고들어가 새로운 미를 창출해낸 경우. 가슴과 소매로 타고 올라가는 곡선, 목을 휘감아 내려오는 곡선에 아무 거침없이 쭉 뻗은 옷고름의 직선이 상쾌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충남 부여의 백제 정림사지 5층석탑(국보9호)은 선의 정적(靜的)인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대표작. 이것은 한국의 탑 중 가장 은은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석탑. 각 층 옥개석(지붕돌)의 직선은 네 모퉁이 끝에서 살짝 올라가면서 부드러운 곡선을 연출하고 동시에 묘한 긴장을 이끌어낸다. 네 귀퉁이의 끝 점은 위 아래층 옥개석 끝 점과 허공에서 이어지면서 인간의 눈에 가장 편안한 직선을 만들어낸다. 미술사학자들은 이것을 백제의 미라고 말한다. 한국의 선이 어디 이뿐이랴.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일본인들이 말해버린 ‘애수(哀愁)의 곡선’이 아니라는 점이다. 엄숙해야 할 때는 엄숙한 선을, 당당해야 할 때는 당당한 선을, 상쾌해야 하거나 편안해야 할 때는 상쾌하고 편안한 선을 적재적소에 구사하며 그에 맞는 새로운 선을 창출했다는 사실. 이것이 우리 선의 미학이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