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수관을 찾아서⑫]생활속에 뿌리내린 사쓰마 도예

  • 입력 1998년 7월 7일 19시 28분


오늘날 사쓰마 도예를 이어가고 있는 도원(陶苑)은 가고시마 현에 1백60개를 헤아린다. 그 속에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곳은 역시 수관도원이 있는 미야마(美山).

겨우 1㎞ 사방에 14개의 도원이 자리잡고 70여명의 도공이 모여 저마다 4백년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2백가구가 채 못 되는 미야마의 인구를 생각하면 말 그대로 도향(陶鄕)이다.

지금 이 미야마에서는 도로 포장이 한창이다. ‘사쓰마야키 4백년 축제’를 위해 단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중앙도로의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갈색 이탈리아석으로 보도와 차도의 문양을 달리하면서 깔고 있다. 그러나 이 돌 포장공사에는, 도예의 전통이 살아 숨쉬는 역사의 거리답게 조용한 분위기를 간직하기 위해 자동차의 통행을 줄여보려는 의도도 있다고 한다. 단순통과 차량들은 돌이 깔린 길을 피해서 포장도로를 택하리라는 것. 환경보호의 깊은 뜻을 생각하는 아름다운 표본을 보는 것 같았다.

이곳 14개의 도원 가운데 8곳이 조선 도공의 후예들이다. 흰 도자기를 중심으로 커다란 화병에서부터 섬세한 투각 등 폭넓은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소메우라 시게루(染浦茂). 모든 작품을 오름가마로 구워내는 고다마 겐지(兒玉健二), 심수관씨의 누님을 부인으로 둔 아라키 미키지로(荒木幹二郎), 흙을 때려서 성형하는 옹기 제작 기법을 전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볏짚을 태운 재를 표면에 흘러내리게 하는 새로운 시도로 잘 알려진 가와노 데쓰야(川野哲也)… 한결같이 쓰임새(用)와 아름다움(美)이라는 도예의 숙명 속에 ‘흙과 불의 마을’을 지켜가고 있다.

수관도원 건너편 산기슭으로 찾아들어가면 바라보이는 민도관(民陶館). 그 옆으로, 그릇의 아름다움에 앞서 그 쓸모를 먼저 생각하며 65년을 한결같이 민예풍의 검은 사쓰마 도예를 이어온 사람이 있다. 조선도공의 후예로 이 마을 최연장자 사메시마 사타로(鮫島佐太郎·80). 조부까지 하(河)라는 성씨를 이어왔다.

“도자기는 장식품이 아닙니다. 찻잔으로든 술잔으로든 생활에 쓰여져야 합니다. 귀하게 알고 쓰지만 때로는 부부 싸움을 하다 깨질 수도 있는 거지요.”

6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그에게 조상 누구도 물레질을 가르친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자연으로부터 배우고, 몸뚱이로 익혀야 한다’는 정신이었다.

옛날 물건을 그대로 베껴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주위의 아픈 눈길도 있었지만 ‘도자기는 기본적으로 생활용기여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대로 그는 서민풍의 그릇을 구워냈다.

지난 20여년 동안 전국에서 그를 찾아든 초심자만도 2백명이 넘는다. 그들을 맞아 문하에 두고 예부터 내려오는 비법을 전해 온 그는, 도자기란 쓰다가 깨지기도 해야 자신들이 계속 구워낼 것이 아니냐고 웃었다.

일본인으로서 도공의 길을 찾아 이 마을로 들어와 자리잡은 사람들도 있다. 삿슈 도샤(薩州陶舍)의 요시나가 세이고(吉永誠悟·42). 다카다야키(高田燒)를 만들던 아버지가 이곳으로 이주한 것이 37년전이었다. 그때 다섯살이었던 그가 이제는 활발하게 가업을 이어가면서, 도공으로서만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여러 일에도 열성을 다하고 있다.

그는 접시에서부터 찻잔까지 다양한 일용품을 만들고 있다. 우리의 분청을 연상시킨다. 푸른 빛이 도는 연회색 바탕에 나뭇잎 무늬를 넣는 작품들로 관심을 끌고 있다.

“처음 한국의 이천에 가서 느낀 것인데… 그 규모에는 압도당했습니다만, 쓰여지는 물건이 아니라 장식품으로 너무 많이 만들고 있는 것 같더군요.”

한국의 도자기 현실을 생각할 때 뼈아픈 지적이었다.

옛 도공들은 번주의 명령으로 한 작품에 6개월에서 1년도 걸렸으나 지금어떻게 그것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말로 사쓰마 도예의 질이 떨어지는 것을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현재 여기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심수관요에서 수련하는 최홍석(崔弘奭·35)씨가 있다. 6년째 심수관요에서 작업하고 있는 그는 일본체류 10년을 넘겼다.

한수산(작가·세종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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