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전국의 시인들이 시인대회를 마치고 마지막 코스로 들른 자갈치 야시장에서의 소주 파티는 한마디로 난장판이었다. 낮에만 해도 점잖을 빼면서 강연을 하고 자작시를 낭송하던 시인들이 자갈치 시장판에 와서는 마치 사육제에 취한 광인(狂人)의 무리처럼 변하는 것이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 여류시인 K처럼 아름답다고 우는 사람, 아무데나 방뇨하는 사람…. 모두들 그렇게 자신의 의식을 무장해제시키는 것이었다.
그렇다, 해안도시 부산은 그렇게 인간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힘이 있다. 평소 긴장하고 눈치보며 살아가는 소시민들에게는 일종의 자유지대 같은 곳이 자갈치시장이고, 매일 젊은 사람들의 사육제가 열리는 곳이 광안리 바닷가이다.
좀 더 문화적이고 점잖게 바다풍경을 만끽하고 싶은 여행자에게는 해운대 백사장에서 달맞이 고개로 넘어가기를 권하고 싶다. 여기에서는 아마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돋이 풍경과 달뜨는 풍경을 동시에 맛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달맞이고개를 넘어가면 문화가 보인다. ‘김성종 추리문학관’이 있고, 사진작가 김홍희가 운영하는 ‘051사진 영상 스튜디오’가 있고 갤러리가 있다. 나는 이 언덕길에 소극장 하나 갖는 게 소원인데 아직 자갈치야시장에서 꼼장어 씹어먹는 장돌뱅이 입장이라서 언제 그 소원이 이뤄질지 예측할 수 없다.
부산은 해안도시이고 예부터 자유항이었다. 100년 전의 부산은 개항장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땅을 잃은 민중이 맨몸으로 당도한 삶의 막장이었다. 부산 부두하역 노무자 생활을 하면서 도쿄 유학을 꿈꾼 청년이 있었고 패주한 동학군이 김해평야를 가로질러 숨어 들기도 했다. 일본인들이 살던 왜관이 있었고 백러시아인이 경영하던 양복점이 있었으며 엉터리 미국인 선교사가 만병수 약을 만들어 떼부자가 되기도 했다. 부산은 그렇게 누구나 맨몸으로 당도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도시였다.
전란통에도 문학과 예술이 살아 숨쉬던 곳이었다. 한국에서 최초로 초현실주의 문학운동이 일어났던 곳이고, 화가 이중섭이 손바닥만한 그림을 미친 듯 그려대던 곳이었다.
부산은 그렇게 맨몸으로 당도해 누구 눈치 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자유항이었다. 그래서 부산사람들은 상당히 거칠고 사납게 느껴질지 모른다. 눈치코치도 없이 떠들고 아무렇게나 행동하는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전국에서 가장 시끄러운 사투리가 부산 사투리라고들 한다. 그러나 나는 그말을 누구 눈치 보지 않고 제 주장을 강하게 펴는 입장으로 이해하고 싶다.
갈수록 인간의 의지와 에너지가 약화되고 제한되는 세계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하고 싶은 말 함부로 못하고 제 뜻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살아가야 하는 시대 속에 우리의 삶은 놓여 있다. 그러나 항구도시 부산은 이런 세상으로부터 고유의 자유인적 기질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무장해제지역이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윤택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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