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부른다/대전·충남]오태석의 내고향 충청

  • 입력 1999년 7월 13일 18시 36분


충청도는 그 느린 말씨처럼 개발이 한참 느려빠진데 남도는 한술 더 떠 6·25 전쟁 전 풍광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 야산에 여우가 없어진 지 몇 년이 지났건만 할멈은 그 말을 믿으려들지 않는다. 그래서 큰사위가 야밤에 재너머 항갱이로 귀가하려면 으레 할멈 아들 형제는 지개 작대기를 들고 따라나서야 된다.

―야이 맞닥뜨려도 쫓아. 때려잡지 말어.

큰 아들 앞서고 사위가 가운데, 둘째가 후미를 지키는 대열을 만들어 재를 넘고 할멈은 대마루에 할미꽃 모양 꾸부리고 앉아 꾸벅 졸다가, 한산장에서 만취되어 지나가는 문산면을 바라본다.

―늦었네, 내려가지

―가요. 갈 수 있슈.

―가다 둠벙에 빠져.

몇 년 전 솔매서 소장수가 소판 돈 죄다 털리고 죽어버린 일이 있고부터 할멈은 한산장날이면 뒷잽재기에 나앉아 밤길 늦은 장꾼들을 붙잡아 사랭채에 재우는 버릇이 생겼다.

제삿날 쓰려고 벽장 속에 묻어 두었던 국수를 꺼내 한 대접 끓여먹이면 장꾼은 또 그날 장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보답했다. 중국산 모조품이 판치는 바람에 한산모시가 거래량이 형편없고 시세도 바닥나 이대로 가다가는 한산 모시도 여우마냥 종멸하고 말 것이다.

할멈은 중국산 모시에 마음이 끌린다. 상해 임시정부가 군자금 마련하려고 보내는 물건임이 분명하다. 내심 쾌재를 부르면서 ‘다음장에는 가서 그 중국산 모시 서너필 꼭 사리’ 다짐하고 외손녀 교과서에서 얼핏 뵈었던 윤봉길 의사 상기하고 새댁모양 얼굴 붉히는 거였다.

그날밤 같은 시간에 넉배재 넘어오던 신틀메 기석이가 귀신을 만났다.

―넉배재 막 넘는데 저쪽 고랭이서 희끗 사람이 뵈더니 쭈구려 앉어. 뒤를 보는가보다 했지. 그러구 오는데 바로 뒤서 발소리가 들리데. 이 사람 밤길이 재네, 그러구 앞서라고 비켜섰구만. 그냥 감감해서 돌아보니 이 사람 저만큼 떨어져서 오데. 뒤쫓아 오려구 그러는가보다. 그러구 앞서는데 어깨를 툭 치면서 불 좀 빌리재. 그래 성냥불 그어줬더니 훅하고 불어 꺼. 다시 성냥불 켰구만. 보니 손에 핏덩어리가 한웅큼 뻘겋더란게. 걸음아 날 살려라 냅다 뛰었구만. 사립문 밀고 엄니 부르면서 나 기절해버렸네.

매우 허황된 이 말은 그러나 기석이 손바닥에 폭 팬 생채기가 입증하고 있다.

지금도 부여 백화정 아래 고란사에서 금강을 보고 있노라면 삼천궁녀가 금세 꽃비가 돼 쏟아져 내리고, 강건너 백사장에서 물새가 끼룩거리면서 운다. 사공은 어디 가고 빈 배만 남아, 백수조 화백 그림같이 단순하고 다채롭지않은 색깔이 아직도 점점이 풍광이 되어 숨쉬는 산하. 거기 가서 이 여름 숨쉬기하고 싶은 어른은 천안 삼거리에서 우회전 남하 하시기 바랍니다.

오태석(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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