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한현림씨(36·서울 서초동)는 며칠전 초등학교 3학년인 딸애(9)를 찾는 전화를 받았다. 밤10시.
“누군데?” “친군데요.” “친구 누구?”
한씨가 딸에게 전화를 건네준 뒤 30여분. “그런데, 아까 TV에서 ‘HOT’가…” 딸의 통화내용은 연예인 얘기로 옮아갔다. 한씨는 “그만 씻고 자라”고 했지만 딸은 20분은 더 전화통을 붙잡았다.
“밤에 전화하는 것은 예사고…. 다짜고짜 ‘지선이 있어요’ 아니면 ‘바꿔주세요’입니다. ‘없다’고 하면 ‘어딨어요’ 해요. 먼저 자기가 누구라고 밝히는 경우는 열명에 한명꼴이예요.”
한씨는 “남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한숨.
어른들은 어떨까. 15년째 서울 힐튼호텔 교환실에서 일하고 있는 강경란실장(39)은 “아무리 영어가 유창해도 전화거는 태도에서 한국인을 구별할 수 있다”며 “자기를 밝히는 외국인과 달리 한국인은 다짜고짜 ‘누구를 바꿔달라’는 식”이라고 지적.
삼성에버랜드 서비스아카데미에서는 평소 교육생의 전화목소리를 녹음했다가 틀어준다. ‘전화응대를 어느 정도는 하고 있다’고 짐작하던 교육생이 많은 것을 깨닫는 시간. 이 아카데미의 경영지원실 안철수팀장(41)은 “예절과 친절은 매출증대와 연결된다”며 “기업뿐 아니라 개인에게도 생존차원의 문제가 됐다”고 역설. 그의 경험담.
“초등학생인 세딸에게 2, 3일 아카데미의 프로그램으로 훈련시켰어요. 아이들은 금방 따라하더군요. 처음에는 딸의 친구들이 ‘안녕하십니까. 분당의 누굽니다’하는 우리 아이들의 전화목소리를 듣고 그냥 끊더라구요. 자동응답기라고 생각한 거지요. 이제 전화예절 하나로 가정교육 잘 시켰다는 얘기를 들어요.”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에 실린 전화예절. 전화를 걸 때는 △안녕하세요? 저는 정은이 친구 준호입니다, 전화를 받을 때는 △여보세요, 성북동입니다 또는 △572국의 5121번입니다 등.
서울 추계초등학교 김기태교감. “아이들은 머리속으로는 알아도 실제로는 부모의 매너가 몸에 밴다”고 말한다.
〈김진경기자〉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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