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 향기]김지하 「무화과」

  • 입력 1999년 1월 17일 19시 11분


돌담 기대 친구 손 붙들고

토한 뒤 눈물 닦고 코풀고 나서

우러른 잿빛 하늘

무화과 한 그루가 그마저 가려섰다.

이봐

내겐 꽃시절이 없었어

꽃 없이 바로 열매 맺는 게

그게 무화과 아닌가

어떤가

친구는 손뽑아 등 다스려주며

이것봐

열매 속에서 속꽃 피는 게

그게 무화과 나무 아닌가

어떤가

일어나 둘이서 검은 개굴창가 따라

비틀거리며 걷는다

검은 도둑괭이 하나가 날쌔게

개굴창을 가로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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