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 향기]나희덕 「빗방울, 빗방울들」

  • 입력 1999년 1월 19일 19시 21분


버스가 달리는 동안 비는

사선이다

세상에 대한 어긋남을

이토록 경쾌하게 보여주는 유리창

어긋남이 멈추는 순간부터 비는

수직으로 흘러내린다

사선을 삼키면서

굵어지고 무거워지는 빗물

흘러내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도록

더 이상 흘러갈 곳이 없으면

창틀에 고여 출렁거린다

출렁거리는 수평선

가끔은 엎질러지기도 하면서

빗물, 다시 사선이다

어둠이 그걸 받아 삼킨다

순간 사선 위에 깃드는

그 바람, 그 빛, 그 가벼움, 그 망설임,

뛰어내리는 것들의 비애가 사선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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