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 하나로 남고 싶었다
심지의 힘으로 맑아져
작은 등명이고 싶었다
어떤 지극함이 찾지 않아
하얀 심지로 오래 있어도 좋았다
등명리에 밤이 오고
바다의 천장에 내걸린 수백 촉 집어등
불빛에 가려진 깊은 밤그늘이어도 좋았다
질문을 만들지 못해 다 미쳐가는
어떤 간절함이 찾아왔다가
등명을 핑계대며 발길질을 해도 좋았다
심지 하나로 꼿꼿해지면서
알았다 불이 붙는 순간
죽음도 함께 시작된다는 것을
좋았다 다름아닌 자기 자신이 그리워
죽을 지경이라는 어떤 그리움이 찾아와
오래 된 심지에 불을 당길 터
―시집 ‘마음의 오지’(문학동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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