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여라. 한낮에 나무들 입 비비는 소리는. 마당가에 떨어지는 그 말씀들의 잔기침. 세상은 높아라. 하늘은 눈이 시려라. 계단을 내려오는 내 조그만 애인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 때처럼. 눈시울이 붉어라. 萬象이 흘러가고 萬象이 흘러오고. 조용하여라. 한해만 살다 가는 꽃들. 허리 아파라. 몸 아파라. 물가로 불려가는 풀꽃의 해진 색깔들. 산을 오르며 사람들은 빈 그루터기에 낮아 쉬리라. 유리병마다 가득 울리는 소리를 채우리라. 한 개비 담배로 이승의 오지 않는 꿈, 땅의 糧食을 이야기하리라. 萬象이 흘러가고 萬象이 흘러오고.
사는 것이 모욕처럼 느껴진다. 목까지 차오르는 구토를 겨우 견디고 있는 시간에 이런 시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상한 마음을 이끌고 절집에 한번 다녀오는 일과 다름없다. 한없이 투명함. 평화로운 오체투지. 생명을 지닌 것에 대한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은 섬김. 잠깐 잊고 있었다. 나 역시 한해만 살다 가는 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