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 향기]이시영 「자취」

  • 입력 1999년 5월 10일 19시 20분


간밤 누가 내 어깨를 고쳐 누이셨나

신이었는가

바람이었는가

아니면 창문 열고 먼 길 오신 나의 어머님이시었나

뜨락에 굵은 빗소리

―시집 ‘조용한 푸른 하늘’(솔출판사)에서―

밤에 내리는 굵은 비. 누군들 그 빗소리에 잠깨어본 적 없을까. 새벽 두어시쯤 잠결에 듣는 빗소리는 분명 누군가의 자취 같다. 억지로 헤어진 누군가의 영혼, 혹은 아직 만나지도 못한 헤매는 영혼. 자신도 모르게 돌아누울 때의 그 무심한 몸짓은 어쩌면 삼라만상의 어느 투명한 지점을, 나의 무의식이 지니고 있는 나의 가장 서늘한 지점을 통과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를 일이다.

신경숙(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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