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가 대신 물오리가 되라고
당신은 말했죠. 마을 장터에서
공기총으로 나를 겨냥하면
심장을 엎지르며
나는 죽는 시늉을 했어요.
해장국도 끓일 줄 모르고
쓸모없이 나뒹구는 돌처럼
한때는 심장의 빈 어둠으로 사는 것이
온통 지긋지긋했지요.
그러나 내가 당신 곁을 떠나면
누가 당신의 공기총을 반짝이도록
닦아줄까요.
당신이 코를 골며
잠자고 있는 동안에
나는 들로 나가 토마토를 심었답니다
떠도는 우리들이라
토마토의 수확을 기다릴 수는 없지만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빈깡통 안에 무심히 떨군
토마토 씨앗 하나가
내 안에서 싹을 틔웠답니다
토마토 씨앗을 심은 후부터
모든 것이 내 안에서 달라졌어요.
어쩌면 내가 토마토를 심은 그 다음부터
우린 마음속에 토마토 밭을
안고 다니기 시작한지도 모르죠.
자, 그러니 이제 당신의 마음도
내게 말해보세요.
―시집 ‘토마토 씨앗을 심은 후부터’(민음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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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히 떨군 토마토 씨앗 하나가 싹이 튼 다음에는… 서로 가엾어 하며 사는 거겠지. 내가 없으면 누가 당신의 공기총을 반짝이도록 닦아주겠는가? 싶은 연민에 의지하며.
신경숙(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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