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 한복판
술 뙤약에 익어 흩어지거나
발이 네 개나 되어서
한 번씩 쓰러졌으면 좋겠다
바람이 불고
많은 것이 떠나갔고 다시
바람 속에 나 있을 것이므로
들판을 오롯이 버티다가
미운 소가 되고 싶다
너무 많이 그리워했으니
어쩌면 한낱 티끌에 지나지 않을
사람을 많이 잃어버리고도
외롭지는 않게
미움을 받든 소가 되고 싶다.
―시집‘아흐레 민박집’(창작과 비평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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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이 시를 전화로 읽어주었다. 다 듣고 내가 한 번 더 읽어보라 하였다. 얼마나 많이 그리워해야 잃어버리고 잃어버려도 외롭지 않게 될 수 있을까. 누추함을, 상실을, 소외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며 많이 살아온 사람…이 이제 미움까지도 받들며 눈물겨움을 지나가고 있다.
신경숙(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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