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 향기]박흥식「미움을 받든 소」

  • 입력 1999년 7월 20일 19시 24분


정든 소가 되고 싶다

한낮 한복판

술 뙤약에 익어 흩어지거나

발이 네 개나 되어서

한 번씩 쓰러졌으면 좋겠다

바람이 불고

많은 것이 떠나갔고 다시

바람 속에 나 있을 것이므로

들판을 오롯이 버티다가

미운 소가 되고 싶다

너무 많이 그리워했으니

어쩌면 한낱 티끌에 지나지 않을

사람을 많이 잃어버리고도

외롭지는 않게

미움을 받든 소가 되고 싶다.

―시집‘아흐레 민박집’(창작과 비평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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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이 시를 전화로 읽어주었다. 다 듣고 내가 한 번 더 읽어보라 하였다. 얼마나 많이 그리워해야 잃어버리고 잃어버려도 외롭지 않게 될 수 있을까. 누추함을, 상실을, 소외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며 많이 살아온 사람…이 이제 미움까지도 받들며 눈물겨움을 지나가고 있다.

신경숙(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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