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이모씨(57)는 최근 친구 딸의 귀국 피아노독주회 초대권을 받고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을 찾았다. 관객이 200여명은 돼 보였다.
정작 그가 놀란 건 연주회 뒤의 리셉션에서다. 스탠딩 부페 형식으로 잘 차린 리셉션에서 이씨는 청중 거의 대부분이 연주자의 친구와 친지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친구는 “모두 초대권으로 들어온 사람들이야. 외부 판매는 안했어”라고 털어 놓았다.
교우의 초청으로 개인전이 열리는 화랑에 간 박모씨(52). 전시회를 연지 1주일이지만 팔린 그림은 없다며 작가는 말했다. “개인전을 했다는 사실이 중요한거죠….”
▼ 얼마나 흔한가? ▼
올해 4,5월 중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400석)에서는 36건의 개인 연주자 공연이 열렸다. 그러나 이 중 일반인을 상대로 10장 이상의 입장권을 판매한 공연은 15건에 불과했다. 결국 21건의 공연은 ‘전석 초대’였던 셈. 연주자 자신이 표를 사서 돌리는 경우도 많아 사실상의 초대 공연은 훨씬 더 많다.
같은 기간 세종문화회관 소강당(440석)에서도 11건의 개인공연 중 5건은 유료관객이 10명 미만에 그쳤다.
미술전시회도 ‘자비(自費)전시’가 꽤 많다. 문예진흥원 통계에 따르면 해마다 약 5000여건의 전시가 열린다. 그러나 그림 판매액이 공식적으로 나타나지 않아 이중 얼마만큼이 자비전시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은 1만2000여명. 미술계의 한 관계자는 “회원외의 작가들까지 포함하면 미술인구는 3만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작가들은 대개 2,3년에 한번씩 개인전을 갖지만 이 중 비용을 들이지 않는 초대전을 갖는 작가는 전체의 10∼30%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 비용은? ▼
개인 콘서트의 ‘표준비용’은 800∼1000만원 정도. 공연기획자에게 행사를 의뢰하는 대행료가 100∼200만원, 대관료가 150만원, 인쇄비 150∼250만원, 리셉션료 100∼150만원 정도 든다. 여기에 피아노 조율비, 초대권 발송비, 전문지 등에 내는 광고비가 포함된다.
무용공연은 무대미술 작곡료 등으로 부담이 더 크다. 최소 2000만원에서 최고 5000만원까지 편차가 큰 편.
개인전시회의 경우 대관료 도록(圖錄)인쇄비 액자비 등을 포함해 보통 600∼1000만원 정도가 든다. 그러나 50여점 이상의 대규모 전시를 하면서 도록도 화집형태로 만들고 고급액자를 사용할 경우 몇천만원은 간단히 넘는다.
결국 중앙과 지방을 합쳐 대략 매년 약 300억∼500억원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금액이 친지들만 불러모으는 공연이나 전시를 위해 쏟아부어지고 있다.
▼ 왜 하나? ▼
음악계의 경우 대학 강단에 진출하려는 젊은 연주가들의 의욕이 출혈공연을 낳고 있다. 거의 모든 대학이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등 ‘권위있는 공간’에서의 연주실적을 교수임용과 강사채용에 요구하고 있기 때문.
무용계는 또 다르다. 각 대학의 전임강사 이상 교수진이 ‘출혈공연’을 한다. 학교측에서 발표회 실적을 일반학과의 연구논문 실적처럼 교수 평가의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
미술의 경우 전시회가 유일한 자기발표의 기회. 작가로서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이어서 ‘울며 겨자먹기’의 출혈 개인전을 열 수밖에 없다.
▼ 대안은 없나? ▼
가장 활발히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분야는 미술계. 최근 박복규 오경환 주태석 등 미술가 20명은 ‘갤러리 퓨전’이라는 멤버십 화랑을 운영하고 있다. 작가들이 일정액을 거둬 유지비로 쓰고 순번을 정해 번갈아 전시하므로 대관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대안공간 풀’도 후원회를 조직해 후원금으로 화랑유지비를 쓰고 젊은 작가들에게 싸게 전시장을 빌려줄 계획이다.
‘대안공간 풀’의 황세준 기획위원은 “정부도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있는 구민회관이나 시민회관을 빌려주는 등 값싼 미술전시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음악 무용 등 공연계에선 대학의 교수임용 및 평가기준이 하루빨리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무용평론가 장광렬은 “교수와 직업무용가는 엄연히 다르다”면서 교수에게 공연실적을 요구하는 것은 착오라고 말했다.
공연장과 전시장이 대관을 줄이고 젊은 연주자들을 위한 기획기능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음악평론가 탁계석. “지금은 극히 적은 수의 예술가들이 돈으로 극장을 점령하고 있는 꼴이죠. 관객 스스로 돈을 내고 찾는 공연을 만들 때 극장은 관객의 것이 됩니다”
〈유윤종·이원홍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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