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형래감독의 ‘용가리’를 놓고 완성도 시비가 벌어지기는 해도 40여분에 이르는 컴퓨터그래픽(CG)화면 도입이 우리 영화사의 ‘사건’이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상영시간 133분중 126분을 CG로 처리한 ‘스타워즈1:보이지 않는 위험’에는 못미치지만 ‘쥬라기 공원’(6분30초) ‘고질라’(13분)와 비교하면 엄청난 물량이다.
특수효과, 그중에서도 우리 CG의 수준은 어디까지 왔나.
우리 영화계의 ‘CG실험’은 94년 ‘구미호’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은행나무 침대’(97년) ‘퇴마록’(98년)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99년) 등으로 이어지며 꾸준히 CG역량을 늘여가고 있다. 다음달 7일 개봉되는 ‘자귀모’를 비롯해 ‘인정사정 볼것 없다’ ‘유령’ 등 올 여름을 겨냥한 영화들이 한결같이 CG활용을 강조하고 나섰다.
TV에서는 SBS ‘고스트’ KBS2 ‘전설의 고향’ 등 드라마에서 CG를 이용해 코믹하거나 오싹한 장면을 만들어내고 있다. 가상현실을 이용한 선거개표방송이나 KBS1 ‘역사스페셜’에도 심심찮게 CG기법이 활용되고 있다.
영상업계 전문가들은 “우리의 다른 영상분야 수준이 ‘구석기시대’일지 몰라도 CG 만큼은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용가리’ 제작사인 ‘제로나인엔터테인먼트’ CG부문 책임자인 유희경씨(30)는 컴퓨터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낸 “3D 캐릭터(용가리)가 40분이상 등장하는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곳은 할리우드와 우리 뿐”이라며 “할리우드와 비교할 때 기술력 차이는 5년정도로 본다”고 말했다.
‘용가리’ CG기술의 핵심은 공룡을 모델로 개발한 용가리와 사이커. 네발 달린 사이커의 경우 다리 하나 만들어 움직이는데 컴퓨터 작업에 2개월이 걸렸다. 두 캐릭터외에도 코브라헬기가 용가리를 공수하거나 용가리가 불을 뿜는 모습은 실제 장면과 CG화면을 합성한 것이다.
‘자귀모’에서는 초보적인 크로마키부터 몰핑, 와핑, 매트 페인팅, 3D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CG기법으로 저승과 이승을 오가는 귀신들의 활약상을 20여분간 환상적으로 연출해냈다는 주장.
TV에서는 19일 방영된 ‘전설…’의 ‘구미호’편에서 김지영이 여우로 얼굴이 변하는 장면에서는 몰핑기법이 사용됐고 ‘고스트’에서는 크로마키를 이용한 장난꾸러기 유령 봉구가 등장하고 있다.
CG분야는 기본적으로 시간과 돈의 싸움. TV의 경우 기술이 낙후됐다기 보다는 방영 시간에 쫓기는 게 큰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구미호’ CG작업에 할애한 시간이 고작 사흘이었을 정도.
KBS에서 특수효과를 담당하는 한상진씨는 “최근 방송에서 꾸준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어 발전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영화관계자들은 ‘쉬리’성공의 이유 중 하나로 ‘유사 할리우드 전략’을 꼽는다. 할리우드 영화 비슷하다는 느낌, 그중에서도 특수효과기술은 우리도 그들만 못지않다는 자부심이 흥행에 큰 몫을 했다는 분석이다. CG분야를 어떻게 응용 발전시키느냐에 한국영화의 미래가 달렸다는 주장이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김갑식·이승헌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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