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조선총독부는 금강산 관광개발을 적극 추진했다. 이는 경원선 철도와 단발령으로 오르는 전철의 설치, 그리고 금강산에 호텔 산장 스키장 등을 유치하는 개발사업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조선시대에 한 달여 걸리던 금강산 여정이 1주일 혹은 3박4일로 단축됐고, 1920년 연간 7백명에 불과하던 금강산 관광객이 1933년에는 4만여명에 이르는 폭발적 증가세를 보였다.(금강산안내기·大熊龍二郎·1934)
금강산 관광이 대중화되면서 김규진(金圭鎭) 김은호(金殷鎬) 이상범(李象範) 변관식(卞寬植) 이응로(李應魯) 허건(許楗) 등 화가들의 사생여행 또한 빈번해졌다.
이번 전시회에서 첫 선을 보이는 일제 강점기의 금강산 그림으로는 석하 김우범(石下 金禹範)의 ‘만물상도(萬物相圖)’와 ‘만폭동도(萬瀑洞圖)’, 김우하(金又荷)의 ‘삼선암도(三仙岩圖)’,이상범의 ‘보덕굴도(普德窟圖)’, 취당 홍순관(翠堂 洪淳寬)의 ‘총석정도(叢石亭圖)’, 옥룡 임자연(玉龍 林自然)의 ‘구룡폭도(九龍瀑圖)’ 등이 있다. 대체로 전통적 회화기법이 퇴락하는 경향이 강하다. 김우하의 그림은 아예 일본의 몽롱체 화법을 고스란히 따르고 있다. 이들 가운데 이상범의 금강산 그림들은 차분한 묘사를 통해 정확한 현장 사생의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이들과 달리 20세기 전반, 금강산 그림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화가가 고암 이응로(顧菴 李應魯·1904∼1989)이다. 1941년 봄 외금강을 여행하면서 그린 ‘집선봉도(集仙峯圖)’는 스케치풍이라서 그런지 집선봉의 풍만한 입체감은 덜 느껴진다. 그러나 전통적 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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