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리 일본패션 엿보기]축소주의/작고 짧고 딱붙게

  • 입력 2000년 4월 2일 21시 07분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일본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말이다. ‘멋짐’‘맵시있음’을 의미하는 일본말 ‘코이키’의 ‘코’는 작다는 뜻이다. 이처럼 일본어 중에는 ‘코’를 붙여 아름다움을 표시하는 낱말이 많다.

그들은 무엇이든 작게 만들어내는 천재들이다. 일본인이 사랑하는 분재는 대자연을 본떠 만든 미니 정원이다. 작은 화분 안에 산과 강, 들과 나무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3월 3일 여자아이들의 명절인 ‘히나 마츠리’에 장식하는 작은 인형세트도 깜찍한 축소주의 소산이다. 맨 윗단에는 왕과 왕비가 앉아 있고, 그 밑에 궁녀 셋, 악사 다섯이 줄지어 있다. 우리나라 백제 금동 대향로에 새겨진 다섯명의 악사처럼 각각 다른 악기를 들고 있다. 밑단에 가즈런히 놓인 수레바퀴와 장롱, 식기 등 집안 도구들까지 아주 작고 정교하기 그지없다.

축소주의 패션 ‘슈렁큰 룩(Shrunken Look)’도 일본의 장기다. ‘슈렁큰’은 ‘작아진’‘줄어든’이라는 의미로, 아기옷같이 작고 몸에 꼭 맞는 스타일이다. 길이를 싹뚝 잘라놓은 듯한 원피스에, 가느다란 머플러와 손지갑보다 조금 큰 숄더백의 조화, 짧고 몸에 딱 붙은 니트점퍼와 미니스커트의 간결한 매치(사진), 넓은 품을 줄여 타이트하게 만든 더스트 코트(통칭 바바리 코트) 등이 일본식 슈렁큰 스타일로 꼽힌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동안 일본식 슈렁큰 룩의 영향을 볼 수 있었다. 서울 강북의 청소년들이 옷을 꼭맞게 입고 심지어 배낭까지 등에 딱붙게 메고 다닌 것이 생각난다.

미국의 헐렁헐렁한 빅 스타일이 떼지어 밀려와도 일본이 끄덕하지 않고 슈렁큰 룩을 지켜낸 것은 그들의 축소지향주의 전통 덕분이었다고나 할까.

(패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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