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던 제가 이제는 “어려보인다”는 말에도 귀가 솔깃해지는 나이. 올해면 나의 20대가 막을 내리는데 더구나 서른 명이 넘는 남자를 선보고도 새 밀레니엄을 홀로 맞아야 하다니요….
정말 서른까지는 잠시더군요. 잠시 머뭇거린 것 같은데, 그 세월이 ‘도둑’처럼 살짝 그리고 성큼 제 곁을 스쳐갔더라구요.
▼내가 혼자 있는 이유▼
저를 이제까지 홀로 남겨둔 요즘 젊은 남자들! 전 당신들에게 할 말이 많아요.
왜 이렇게 박력이 없나요? 좋으면 좀 적극적이면 안되나요? 올해 결혼한 제 여자친구 여섯명 중 다섯명이 먼저 프로포즈했을 정도예요.
자신감은 또 왜 그렇게 없나요. 장점은 다 놔두고 컴플렉스에만 빠져있는 나약한 당신. 최근 맞선봤던 L씨. “내가 외아들인데…”라며 그저 제게 ‘처분만 내려주십쇼’하듯 미적미적했죠.
또 맞벌이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집안 일에 대해선 ‘개념’이 없던 K씨. 제게 “가정은 다 잘 굴러가고 아이도 낳아 놓으면 저절로 크기 마련”이라고 태평하게 말했었죠.당신도 정신차리세요.
▼맞선에서 익힌 ‘남자보는 법’▼
제가 선 본 30명을 평균잡아 세번씩만 만났다해도 90번.‘체험’에 따르면 무엇이든 초기에 싹수가 보이는 법이예요. 사소하다고 절대 무시하면 안돼요.
우선 처음부터 집안이야기 등 자신의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털어놓는 남자는 피하세요. 허풍선이일 가능성이 높아요.
여자들은 매너좋은 남자에 약하지만 너무 좋은 남자도 좋지 않지요.
커피에 넣을 각설탕 껍질을 까줄 만큼 매너가 지나치게 좋은 사람은 바람둥이 기질의 소유자예요. 특히 “뭐, 먹을까요?”했을 때 “경희씨 좋은 거면 뭐든 좋아요”라며 상대방에게 맞춰주는 사람도 친해지면 곧 표변할 인물이랍니다.
얼른 상대의 성격을 알고 싶을 땐? 제 경험으론 발걸음에서 읽을 수 있더군요. 묵직하고 의젓하면 성격도 비슷하더라구요. 그런데 난 왜 아직도 혼자냐구요?
▼내가찾는‘반쪽’은▼
맞선 상대의 90%를 퇴짜놓았고 10%는 그쪽에서 저를 부담스러워해 이뤄지지 못했지만 사실 제가 그렇게 눈이 높거나 까다로운 건 아니예요.
키 170㎝ 이상, 성격원만한 사람. 또 대졸학력에 대기업이나 공기업 직장인. 아참,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것을 구분할 정도의 언변은 지녀야겠죠. 전 이 다섯가지 조건의 모두가 ‘중’ 이상되는 진짜 평범한 남자를 찾았어요. 그런데도 맞선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아버진 “제 주제를 모르고…”라며 혀를 찹니다.
친구들은 내가 제 정신이 아니라고 해요. 맞선으로 결혼하려면 ‘돈이면 돈, 명예면 명예’ 딱 한가지만 봐야 한다며….
왜 꼭 맞선으로 배우자를 구하려 하느냐는 사람도 있지요. 선을 보면 우선 뒷배경이 확실하고 ‘뒷끝’이 깨끗해요. 사실 대학동창 서른명 중 27명이 여자고, 졸업한 뒤 학원에서 아이들만 상대하다 보니 남자를 만날 마땅한 통로도 없었어요.
‘장고(長考) 끝에 악수(惡手)’가 되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면 아쉬운 사람도 놓쳤지요. 이제라도 친구 충고대로 딱 한가지만 봐야 할까요.
〈정리(대전)〓이나연기자〉larosa@donga.com
▼"결혼은 꼭 할거에요"▼
김경희씨는 대학시절 7번, 졸업 이후 최소한 23번의 맞선 경험이 있다. 단순한 소개팅이나 미팅이어서 계수하지 않는 것이 10번 정도.
▽Q(기자)〓결혼은 반드시 할 생각이세요?
▽A(이씨)〓물론입니다. 능력이 있는 여자라면 혼자 살아도 상관없지만 제겐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Q〓결혼할 인연이란 따로 있다고 보세요?
▽A〓‘완전한 인연’은 만들어가는 것 아닐까요.
▽Q〓흔히 사랑하니까 결혼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사랑을 믿지는 않나요?
▽A〓맞선을 보고 나면 2∼3개월 안에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그 사이에 무슨 대단한 사랑이 생길까요. 사랑은 결혼해서 만들어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Q〓결혼상대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다른 사람에게 추천한다면?
▽A〓경제력 판단력 등 ‘력’을 갖췄느냐는 것이지요. 지금까지 경험을 보면 여자에게 얼마나 너그러우냐는 남자의 자신감과 능력에 비례하더군요.
▼ 손꼽히는 전국의 맞선 장소▼
맞선에도 명소(名所)가 있다. 이곳에서 맞선을 보면 결혼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속설이 그럴듯하게 나돈다.
듀오 등 결혼정보회사는 이런 현상의 타당성을 설명하기 위해 심리학의 ‘후광효과(後光效果)’를 도입한다. 첫만남의 장소가 상대에 대한 이미지를 결정하기 때문에 격조있는 장소에서 만나면 상대방도 그렇게 보인다는 설명.
대표적 명소로 꼽히는 곳이 서울 중구 태평로의 서울프라자호텔 22층 토파즈(02―771―2200). 호텔측은 “북악 인왕 남산이 둘러싸여 있는 명당”이라며 “주말엔 맞선보는 남녀가 많아 찾아오는 손님과 만날 사람의 이름을 적는 목록부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르네상스호텔 1층의 엘리제(02―2222―8635), 조선호텔 커피숍 컴파스로즈(02―317―0365) 등도 유명하다. 또 최근 서울 강남의 야경이 좋은 카페도 맞선의 명소로 떠올랐다. 라퓨다 (02―538―6901)와 스카이팰리스(02―3469―4000) 등이 많이 알려져 있다.
부산의 롯데호텔 페닌슐라(051―810―6380)는 내부장식인 박제 호랑이의 기(氣) 때문에 성공률이 높다는 속설이 떠돈다. 또 조선비치호텔의 파노라마라운지(051―749―7435)도 유명한데 커피숍 뒷편의 바닷가 산책길이 첫만남의 어색함을 없애주기 때문이라고.
대구의 샤갈의 눈내리는 마을(053―554―7376)는 주말엔 맞선을 보는 커플이 10여쌍. 또 대전 콘에어레스토랑(042―488―4040)의 창가쪽 좌석들도 ‘맞선 지정석’으로 불린다.
〈이나연기자〉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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