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고학년이면 벌써 사춘기에 접어드는 요즘 10대들. “엄마는 귀뚫어도 되지만 너는 안돼”“아저씨들은 ‘영계’를 좋아하지만 너희는 원조교제를 하면 안돼”등 이중적 가치를 들이대는 부모와 사회가 10대는 싫다.
특히 정보화시대를 사는 요즘 딸들은 부모세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정보도 많고 유혹도 많다. 부모는 두려움을 가지며 딸들의 반항에 분노하고, 딸들은 딸들대로 자기권리를 주장하면서 그들을 ‘지켜주려는’ 부모의 노력에 화를 낸다. 이제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애가 말을 안들어▼
섬세한 딸들은 다른 사람의 생각과 느낌을 잘 파악한다. 그들은 부모의 요구에 맞추는데도 뛰어나 어렸을 때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왜 청소년기에 들어 문제가 일어나는 걸까.
장래희망이 연기자인 고1 딸을 둔 이영춘씨(40·인천 남구 관교동).
“전 고생 많이 하면서 컸어요. 그에 비하면 딸애가 부족한 것이 뭐가 있나요. 공부만 하면 되는데 공부가 하기 싫다며 안해요. 딸애가 잘 되기를 바라는게 엄마인데 어떻게 그냥 내버려두겠어요.”
이씨의 딸은 중학교 1학년때부터 달라졌다. 뭘 물어봐도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불만에 가득차 툭툭 말을 내던졌다. 이씨는 자신이 실패자가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엄마와는 말이 안통해▼
이씨의 딸 박설미양(17)의 얘기는 다르다.
얼마전 친구가 전화를 걸어 연극보러 가자고 했다. 옆에서 듣던 엄마가 “어딜 또 나가느냐”고 했고 설미는 “참견 좀 하지 말라구요”하고 받아쳤다. 엄마는 “네가 무슨 연기냐.공부하기 싫으니까 그런게 아니냐”고 야단을 치고 설미는 “내가 연기하는 걸 한번이라고 보고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하고 대꾸했다.
그들은 세상에 할 일도 많고 관심도 다양한데 엄마들은 변하지 않은 채 공부만 강조한다고 주장한다.
“공부를 못하는 건 미안해요. 그렇지만 엄마와 대화하고 싶어도 엄마와 나 사이에 벽이 있는 것 같아요. 엄마랑 얘기해봤자 나도 신경질나고 엄마도 신경질만 내니까.”
▼흑백엄마와 무지개빛 딸▼
산업화사회에 태어나 흑백TV를 보고 학교에선 국민교육헌장을 외웠던 부모세대는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을 얻으면 잘살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에 비해 후기산업사회에 출생한 10대는 컬러TV와 뮤직비디오 컴퓨터게임을 친구삼아 자랐다. 어른이 부르면 “네”가 아니라 “왜요?”하고, 이유를 물으면 논리적 대답 대신 “그냥”이라고 대답하며, 소비가 놀이고 튀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죽는게 낫다고 여기는 10대 딸들과 부모는 삶의 패러다임이 다를 수 밖에 없다.
▼한발 물러서기▼
10대 딸들은 엄마에게 미친 듯이 화를 내기도 하지만 속으론 엄마를 이해한다고 고백한다.
박양의 학교친구 박지인양은 “날라리같은 중3 여동생 때문에 힘들어하는 엄마가 불쌍하다”며 “어려서는 아빠를 더 좋아했는데 엄마가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엄마를 더 좋아하게 됐다”고 말한다.
일산신도시에 사는 김순덕씨(38)는 중1인 작은애가 초등학교 6학년때 귀를 뚫고 싶다고 해서 어린이날 선물로 귀를 뚫어준 경험을 들려준다.
“어린이 시절을 졸업하고 이제 청소년이 된다는 것을 알려줬다. 엄마도 딸이 더 이상 품안의 자식이 아님을 인정하고 조력자로 다시 태어나야 할 것 같다. 우리 딸들이 살 세상은 우리 때와 다르지 않은가.”
<김진경기자>kjk9@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