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이맘때 미국 실리콘밸리로 출장명령을 받은 안미영씨(31·서울 동작구 사당동)는 고민했다.
정보통신부가 1998년 처음으로 추진한 ‘실리콘밸리 진출 중소업체’지원사업에 그가 다니던 인터넷서비스업체 N사가 12개사 중 하나로 선정됐다. 좋은 기회였다. 아기는 언니에게 맡기기로 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그러다 결혼 깨지기 쉽다” 등 무성한 ‘남의 말’을 뒤로 한 채….
실리콘밸리의 현실은 냉혹했다. 언어장벽에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쪼들렸다. 그래도 안씨는 마이크로소프트나 AOL의 유력자가 강론하고 토론하는 모임에 참가하는 등 최대한의 것을 배워오려고 온힘을 다했다.
“도착 한 달만에 아이부터 데려왔다. 아이가 있어야 마음을 다잡을 수 있겠기에. 실제로 내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으려고 끝까지 버텼다.”
1년반만에 돌아오니 ‘입지’가 달라졌다. ‘실리콘밸리 특파원’. 현지의 경험으로 얻은 닉네임.
벤처캐피털리스트가 “이러저러한 사업계획을 지닌 벤처에 투자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상담을 청해오면 실리콘벨리에선 이런 사례가 있었다고 설명해줄 정도가 됐다. 회사에서 상당한 스톡옵션도 받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인생의 ‘규모’가 달라진 것이라고 안씨는 말한다.
“이전엔 엔지니어로 살고 싶었다. 이젠 최고 경영자가 되고 싶다.”
지금 벤처창업을 준비 중. 기업문화나 조직관리 등 ‘되는 기업’을 만드는 방법을 몸으로 익힌 덕분이다. 그게 뭐냐고?
실리콘밸리에선 사람이 전부라는 사실. 투자가들도 투자결정을 할 때 최고경영자나 핵심멤버를 70%, 시장을 20%, 기술은 10% 고려한다는 것을 배웠다. 미국서 돌아온 이유도 바로 사람, 그 중에서도 가족의 중함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이나연기자>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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