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만의 종교이야기]내 몸안의 악마 다스리기

  • 입력 2000년 11월 23일 19시 02분


내일 중대한 일이 있어 잠을 충분히 자둬야 할 때, 오히려 잠을 이룰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자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잠은 멀리 도망가 버린다. 점점 짜증이 일기 시작하고, 바램대로 되지 않는 내 몸에 대해 화가 치밀어 오른다. 벌떡 일어나 이 방 저 방 돌아다녀 보지만 효과가 없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내 몸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나를 방해하는 것 같다. 문득 나에 대해 두려움마저 든다.

처음에는 잡힐 듯, 잡힐 듯하던 그것이었다. 그러나 그 단어를 떠올리려고 머리를 쥐어짜듯 하자 더욱 오리무중의 상태에 빠져 버린다. 이제는 단어 자체가 아니라, 땀을 뻘뻘 흘리며 기억을 되살리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한심한 자신의 모습이 더 부각된다. 자기의 머리를 쥐어박기도 하고, 이마에 주름을 만들어 정신을 집중하려고 하지만 모두 소용이 없다.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자신의 능력에 대해 회의가 일어나고 어깨가 마냥 움추려드는 느낌이 든다. 나는 저장해 놓은 나의 기억이 반항하며 나로부터 빠져 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 의지와 반대편의 나◇

이런 경우에 내 몸에 악마가 있는 것 같다.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를 움직이고 있는 힘이 몸 안에 똬리를 틀고 있다고 느낀다. 불현 듯 반갑지 않은 이 ‘불온한’ 힘을 몰아내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어떻게 하면 이 악마적 힘을 쫓아낼 수 있을까?

흔히 볼 수 있는 방법은 악마의 침입을 가능케 한 것이 나약한 자신의 탓이라고 보고, 보다 가혹하게 자신을 단련하는 것이다. 이는 엄격하게 자신을 통제하여 더 이상의 악마 침입을 방지하는 한편, 이미 들어와 있는 악마를 제거하려는 방법이다. 악마의 침입로인 몸의 모든 구멍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온 몸을 쥐어짜듯이 혹사하여 나약해지기 쉬운 자신을 경계한다.

◇악마와의 공존도 한 방법◇

하지만 악마를 쫓아내려는 이런 금욕주의적 방법과는 달리, 악마와의 공존을 꾀하며 악마를다스리려는 방법이 있다. 이는 자신 안에 존재하는 악마적 힘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이질성(異質性)에 친숙해지는 방법이다. 내 안에는 내가 아는 나뿐만 아니라, 내가 모르는 이질적인 나도 존재한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그런 나에게 너그러워지는 것이다. 그럴 때 그 타자(他者)는 나를 위협하는 존재라기 보다는 나를 지루하지 않게 해주는 친구처럼 된다. 온 몸의 근육을 수축시키며 언제나 긴장을 풀지 않는 대신, 잔뜩 준 힘을 빼고 얼굴없는 내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이럴 경우 그 타자를 내 뜻대로 부려지지 않는다고 악마라고 부른 것이 부끄러워진다.

악마적 힘을 다루는 두 가지 방법은 우리 주변의 종교전통 안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종교의 역사는 내 안의 이질적 타자를 제거하려는 태도보다 그것을 끌어안아 포용하는 자세가 더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끊임없는 거듭남과 나에 대한 집착에서 해방됨을 강조하는 종교적 자세가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장석만(한국종교연구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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