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땐 꼭 닭삶을 때의 냄새가 났다. 땅군이 메고 다니던 커다란 통에서 우굴거리던 뱀과 그냥 죽이면 다시 살아나 복수를 한다 해 여러 조각 난 채 철망에 걸려 있던 뱀의 모습이 지금도 선명히 떠오른다.
왜 그토록 뱀을 잔인하게 죽여야만 했을까? 아마도 뱀이 지니고 있는 여러 상징 중에서 몇몇 부정적 측면만이 부각되어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표적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뱀에 대한 그런 태도에는 한국전쟁 이후 각박하고 잔인해진 인간관계, 자연에 대한 착취와 정복 등이 똬리를 틀고 있으며, 당시 급성장하고 있던 기독교의 구제불능성 뱀 혐오증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쳤다고 여겨진다.
기독교의 성경에 나오는 에덴동산 이야기는 인간의 타락을 초래한 악마의 상징으로 뱀이 부각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여기에서 뱀은 빛과 생명에 대립되는 어둠과 죽음의 세력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다.
하지만 ‘뱀처럼 지혜로우라’는 예수의 말처럼 뱀은 보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는 뱀이 사람의 귀를 핥으면 그는 동물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된다는 내용이 있다.
이는 뱀과 신비로운 지식 사이에 긴밀한 연관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허물벗는 뱀의 이미지는 뱀을 영생불사의 상징으로, 그리고 성적 활력의 상징으로 여기게 했다. 병치료와 연관된 여러 문양(紋樣)에서 뱀이 생명력과 치유력을 나타내는 것으로 쓰여지는 것도 이런 점과 닿아 있다.
또한 뱀은 땅과 연관되는 일도 적지 않다. 그래서 뱀은 땅의 풍요로움과 관련된 비(雨)와 달(月)의 상징과도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그리고 세계 각지의 수많은 창조신화에는 창조가 이루어지기 전의 미분화된 원초상태를 뱀으로 상징화하고 있다. 자기꼬리를 물고 있는 형상의 ‘우로보로스’는 바로 우주의 원초적인 힘을 나타내는 뱀이다.
전통적인 우리의 민간신앙에서 뱀은 신령스런 존재로 간주되어 왔다. 집안에 살고 있는 뱀은 그 집을 지켜주는 수호자이며, 행운과 번영을 가져다 준다고 여겨 경외의 대상으로 취급되었다. 게다가 죽은 조상이 종종 뱀의 모습으로 후손들에게 나타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뱀이 지닌 영험함은 각별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뱀 신앙은 근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척결해야 할 미신으로 전락했고, 뱀은 기독교의 저주를 받아 사악함의 상징이 되었다. 난 이렇게 뱀을 저주하는 이들이 한번도 뱀을 제대로 본 적이 없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미리 자기 머리 속에 박아 놓은 편견을 버리고 뱀을 한번 쳐다보라. 그야말로 조물주가 빚어 만든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장석만(한국종교연구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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