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간에다 돼지를 친다. 배설물을 처리시키자는 것이다. 2∼3평 정도의 터에 돌로 네모지게 한 길 남짓 쌓아올린 것이 측간이요, 동시에 돈사다. 한편 구석에다 기다란 돌 두 개를 다리처럼 놓았다. 여기에 앉아 뒤를 본다. 그러면 돼지는 그 아래서 기다렸다가 배설물을 처리한다. …연밤송이 같은 콧구멍을 벌룩거리며 꿀꿀댄다.
‘백치 아다다’의 작가 계용묵이 쓴 제주기행 ‘탐라점철’(耽羅點綴) 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것이 제주 토종 씨돼지다. 연밤송이 같은 콧구멍을 벌름거리는 것이 귀엽지 않은가. 성깔이 나면 고집스럽게 일직선으로 내닫는 근성이 있어 매우 저돌적이지만, 복지부동으로 간사하게 눈알만 굴리는 현대 지식인들과는 그 용체(用體)부터 다르다. 이것이 돼지의 대덕(大德)이다.
제주도에서도 심방굿(큰굿) 상에 오른 것은 돼지머리다. 심방이란 새끼무당이 아닌 마을을 도는 큰무당을 말한다. 심방은 500여 자연마을에 흩어져 살면서 신(神)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굿을 아뢴다. 1만8000신(神)이나 되는 토속공간 속에서 제주가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서사무가를 풀어내며 제주의 삶이 얼마나 참되고 뜻 깊은지 노래한다.
굿은 세 가지로 나눈다. 맞이굿과 본풀이 그리고 놀이굿이 따로 떼어진다. 용왕맞이, 불도맞이, 일월맞이, 초공맞이, 이공맞이, 삼공맞이, 시왕맞이 등이 있고, 본풀이는 초공본풀이, 삼공본풀이, 세경본풀이, 귀양풀이가 있다. 놀이굿은 세경놀이, 영감놀이, 전상놀이가 있다.
바닷가에 가득 상을 차리고 깃발을 달아서 신들을 모신다. 갓 쓰고 도포를 걸친 심방이 너울너울 춤을 추면서 사설을 한다. 굿이 끝나면 손님 신은 짚으로 만든 쪽배를 띄워 바다로 내보낸다. 마을사람들은 총총걸음으로 돌아간다. 가는 길에 되돌아보면 안 된다. 앞만 보며 걷는다. 긴 노래로 한을 극복하는 삶은 이 길뿐이다. 긴 노랫소리가 바람 타고 섬을 떠돌며 아득하게 수평선 밖으로 띄배를 밀어낸다. 이는‘위도 띄뱃놀이’도, ‘영산도 띄뱃놀이’도 다 그렇다.
성읍 민속마을 못미처 낭밭(강찬홍·011-690-3210)이라는 흑돼지 전문식당이 있다. ‘도새기 불고기 정식’이 있으며 ‘물 파전’‘좁쌀막걸리’가 있다. 까만 털이 벗겨져도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 진짜 흑돼지 고기다. 성읍 2리 방목장엔 200여 마리의 흑돼지가 있다. 이것도 제주도 내 6군데의 방목장밖에는 없어 100kg 미만의 살코기는 만나기 힘들다. 방목장에서 그 이하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출하를 기피한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복아장(개장국)이나 새끼회(애저찜)를 먹으러 가는 것이 더위를 끄는 데 좋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낭밭의 ‘도새기 불고기 정식’은 맛이 부드럽고 월등하다. 그래서 소문난 집이고 주인 강씨가 남제주군 종돈장 소장으로 오래 있어 그 경험을 노하우로 축적했다. 아는 사람에게는 돼지목 뒷부분의 고기토막을 일컫는 ‘솔뒤’도 살짝 내어준다. 이 ‘솔뒤’는 칼잡이가 현장에 모여 있는 구경꾼들에게 한두 점씩 대접하는 날고기를 뜻한다.
제주도의 농어촌에선 돼지를 잡을 땐 추렴용이 아니면 희생용으로 나누어 부른다. 추렴용일 경우 그 나누어 가지는 부위별 이름은 다음과 같다. ① 대가리 ② 목도로기 ③ 작빼 ④ 전각 ⑤ 갈비 ⑥ 숭 ⑦ 일른 ⑧ 후각 ⑨ 비피 ⑩ 내장 등이다. 가장 맛있는 부위로 친다면 ②④⑥⑧⑦ 순번으로 치고, 소금에 찍어 맛보는 ‘솔뒤’는 바로 ②에 속하는 부위다. 코시롱한 맛이 독특하다.
쇠고기 부위를 145개 정도나 나누는 한국 민족의 맛보기는 돼지고기에서도 이처럼 정교하다. 오죽했으면 부여(백제)의 관등 이름이 가축의 이름인 개, 말, 돼지, 소 등으로 성받이를 했을까. 또 설문해자로는 ‘家’를 ‘ (울)+豕(돼지 시)’로 보아 번식력이 강한 돼지를 부의 축적 수단으로 보았을까.
낭밭 집에서는 좁쌀주와 파메밀전이 먼저 나오는데 좁껍데기 술은 한 뚝배기에 5000원, 파 물전은 3000원, 정식은 6000원이다. 나는 낭밭을 나오며 강찬홍씨에게 이렇게 말을 건넸다.
이 살코기는 3대 교배종쯤 되겠는데 종돈장 소장이었다면서 진짜 연밤송이 같은 씨돼지는 어디에서 잃어버린 것이죠? 그 씨돼지를 다시 찾는다면 세계 시장에서 한판 승부수를 던져보겠는데! 그 역시 그 잃어버린 연밤송이가 아쉽다는 듯이 코를 벌죽거렸다.
[송수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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