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장도 드는 칼로 이리 어석 저리 어석
단단히 끊어내어 앞강물에 흔들어서
뒷강물에 씻어다가 은장도 드는칼로
이리 어석 저리 어석 은탄 같은 고추장에
말피 같은 전지장에 귀눈 같은 참기름에
새큼새큼 초지장에 도리도리 재축판에
은대지비 은절 걸고 솟대지비 놋설걸이
올라가는 구관 행차 한절이나 찝어보소
전래되는 미나리요(謠)다. 겨울에서 초봄까지 산간지방에선 입맛을 돋우는 미나리강회로 빙어회만한 것이 없을 듯하다. 적당량의 빙어(氷魚)를 미나리채와 초고추장에 썩썩 비벼 먹는 맛이란 생생력(生生力) 그대로일 듯하다. 이는 소진한 겨울의 문턱에서 봄기운을 부르는 음식이다.
빙어로는 한강 빙어를 제일로 쳤지만, 한강은 조선 말에 이미 오염되기 시작한 강이다. 지금이야 팔당호가 오염되어 얼음 구덩이에서 낚는 재미일 뿐이고, 씹는 재미야 소양호 빙어가 제일이다.
소양호 상류(소양강댐 밑) 콧구멍다리 콧구멍집에 사람들이 몰린다. 이 다리 밑의 강바닥이 빙어 낚시터고, 다리 입구 움막 같은 콧구멍집에서 산 빙어 무침이 한창이다. 혹시나 겨울 미나리 무침이 나올까 싶어 콧구멍집(이종국ㆍ011-370-4645)에 들어갔더니 상추와 무채가 이를 대신한다. 이쯤만 돼도 겨울 빙어회는 괜찮다. 팔딱거리는 빙어의 숨구멍에서 먼저 생생력이 전해온다. 큰 접시는 2만원, 작은 접시는 1만2000원이다. 겨울 먹을거리 장사치곤 수입도 짭짤한 모양이다.
빙어 물회는 가장 손쉽게 먹을 수 있는 방법. 소주 한 모금 털어넣고 겨울 호수의 요정이라 할 수 있는, 속까지 훤히 비치는 빙어를 초고추장에 그대로 찍어 먹는 맛이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다. 이때는 반드시 빙어의 꼬리부분을 잡아야 한다. 머리를 잡으면 꼬리를 심하게 흔들어대 초고추장이 얼굴에 튀기 때문이다. 산 채로 먹기 뭣한 사람은 빙어튀김을 택해도 좋다. 반죽한 튀김가루에 빙어를 버무려 펄펄 끓는 식용유에다 노릇노릇 익힌 빙어 맛은 상큼해서 좋다. 또 ‘도리뱅뱅이’는 튀김과 조림의 혼합인데 깨끗이 씻은 빙어를 프라이팬에 둥그렇게 배열하고 기름에 살짝 튀긴다. 여기에 파, 마늘, 고추장, 간장 등 갖은 양념을 더해 졸이면 감칠맛 나는 ‘도리뱅뱅이’가 된다.
빙어회 무침은 상추, 마늘, 양파 등을 섞은 양념장에 빙어를 버무린 것으로 물회와는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물회 먹기가 두려운 아이들에겐 튀김이나 도리뱅뱅이를 해주면 될 듯하다.
가족 나들이나 겨울 여행으로도 소양호 빙어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입맛과 손맛을 함께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얼음장을 깨고 낚시에 손맛을 익히는 동안, 어머니와 딸은 버너와 코펠에 준비해간 물을 붓고 끓이기도 하고 낚아올린 빙어를 철판에서 튀기기도 한다.
소양호는 매년 겨울 거대한 얼음 호수로 변한다. 인제군 남면 남전리에서는 매년 얼음 벌판으로 변한 호수 한가운데서 빙어축제를 연다. 어촌계에서 6년 전부터 매년 대량으로 빙어를 인공 부화해 방류해 왔기 때문이다.
미나리채 대신 ‘상추쌈 빙어회’만으로도 필자는 더없이 즐거웠다. 제철도 아닌 상추가 미나리 행세를 해주니 말이다. 장희빈을 빗대어 ‘미나리는 사철, 장다리꽃은 한철’이라 했는데 이렇듯 상추가 올라와 사철이다. 이수광의 ‘지봉유설 식물부’에는 상추를 고구려의 특산물로 보았다. 수나라 사람들이 종자를 얻기 위해 천금 같은 값을 주고 사갔기 때문이다.
과연 소양호 콧구멍집에서 맛본 ‘상추 빙어쌈’은 천금채(千金菜)라 부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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