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때를 알리며 멀리까지 향기를 실어 보내는 꽃이 있다. 황혼녘에 피는 분꽃이다. 해 다 저문 때 어서어서 밥 지으라고 굴풋한 시장기를 확 치미는 꽃, 분냄새다. 꽃으로 보면 그렇거니와 음식으로 보면 느랏내(냇내)가 지독한 동해 남부 해안의 곰장어다.
제주 자리젓은 곰삭아 숙성된 향이지만, 기장으로 대표되는 짚불 곰장어는 퍽이나 원초적이다. 1950년대나 60년대 초듬의 저 어두웠던 시절, 부산 자갈치(도떼기)에 내려가면 짚불을 피워놓고 구워 먹었던 ‘곰장어 구이’ 맛을 아는 사람은 아직도 잊지 못할 것이다. 그것도 으스스 추운 겨울 누더기 헌옷을 걸쳤던 사람들 말이다. 그런 곰장어가 이젠 어엿한 향토음식으로 자리잡았다.
기장읍을 거쳐 멸치로 유명한 대변항에서 송정 해수욕장과 해운대로 내려가는 길목(공수마을)에는 3대째 음식맛을 갈무리해 온 ‘기장곰장어집’(부산시 기장읍 시랑리ㆍ051-721-2934)이 있다.
“참 지독스럽게도 못 먹고 가난했던 시절이지요. 보릿고개가 오면 부황 든 사람들이 들이나 산에서 짚불이나 생솔잎에 구워 먹었던 것이 이 흉물스런 곰장어였어요. 잘사는 사람들이야 어디 거들떠나 보았겠어요?”
본점 주인 김영근씨의 말이다. 곰장어는 ‘자산어보’나 ‘동의보감’에도 나오는데, 특히 ‘먹장어’ 라 불렸던 물고기다. 눈이 피부에 묻혀 가려 있으므로 입으로 먹이를 흡입하여 소화하고, 감각더듬이 6개가 퇴화된 눈을 대신한다. 몸 양쪽 180개의 구멍에서 나오는 진액(그물막)으로 자기 몸을 감싸고 적의 침입을 막으며 청정 해수온도 18℃ 미만, 150m 정도 수심의 뻘 밑바닥이나 돌 밑에서 곰지락거리며 멍청이 군락을 이루며 살기에 곰장어라 불려왔다.
고산대의 꽃으로 말하면 얼레지 꽃씨와 같아 개미들이 물어다 당분 덩어리 ‘아이오좀’만 빨아먹고 굴 밖으로 버리면 이듬해 봄, 슬픈 군락지를 이루는 것과 같다. 또 물풀로 말하면 모세혈관의 피를 거르고 숙취에 좋다는 환상의 물풀 순채와 같아 몸을 진액으로 쳐바르고 산다. 동시에 비타민 A 덩어리라 치매, 고혈압, 시력 회복, 당뇨, 주독에 좋고 문헌의 기록대로라면 독이 없어 악창과 개창을 치료하는 특효약으로도 알려져 왔다.
김영근씨의 말에 따르면 최근에 개발한 ‘생솔잎 곰장어구이’외에도 선호도가 높은 양념구이가 있고 소금구이, 통구이, 매운탕, 볶음, 된장국 등 차림표가 다양해서 좋다. 느랏내 때문에 식으면 맛이 가시기에 뜨거울 때가 더 맛있다고 먹는 방법까지 알려준다. 숯불 장어구이처럼 맛이 쫀득쫀득하고, 특히 양념구이는 달콤새콤하여 어린애들까지 입맛 들이기 좋다.
기동력을 잃고 바다 밑구멍에서 곰지락거리며 사는 곰장어야말로 스태미나 음식이며 동시에 유일하게 부산시가 내놓을 만한 향토음식에 들 것이다. 더구나 양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연산이란 점에서 어디를 가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해운대가 자랑으로 여기는 복국만 해도 은복이나 밀복 등은 독이 극소하여 참복과는 맛도 그렇거니와 값도 비교가 안 되는 게 요즘 시장바닥 인심이다. 개매화꽃보고 참매화꽃이라거나 개복국 먹고 참복국 먹었단들 곰장어처럼 눈이 퇴화해 버린 사람들이 어찌 알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다국적 퓨전 시대에는 냄새만으로도 음식을 가려 먹을 줄 아는 상식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마 황혼 무렵 굴뚝의 밥 짓는 연기가 드높이 오를 때 자갈치시장 아지매들은 시장기에 푹 젖어든 그 느랏내와 같은 향수식품으로 짚불 곰장어 맛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눈으로 즐기거나 맛에 앞서 냄새로 먼저 오는 제주 ‘몸국’과 같은 음식이 곧 짚불 곰장어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또 이 곰장어가 없다면 부산 음식이 얼마나 심심하고 짠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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