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격은 레포츠일까? 사격이라곤 군대 시절 해본 것이 전부인 나로서는 ‘아니올시다’라는 대답밖에 할 말이 없다. 사격을 생각하면 표독한 사격 조교들의 명령에 따라 철모에 눌린 채 ‘엎드려 쏴’ 자세를 하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조교들이 힘차게 깃발을 펄럭이며 “좌선 이상 무! 우선 이상 무!”를 외치면, 통제관은 “사격 개시!” 명령을 내렸다. 귀청을 찢는 듯한 옆 사대의 총성에 비로소 어금니를 사려물고 방아쇠를 당기고 나면 볼때기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얼얼했다. 정신없이 쏘고 나면 정조준한 표적에 잘 맞았는지보다도 날아간 탄피를 찾는 것이 더 급했다. 오발사고 없이 ‘조인트’ 까이지 않고 사선(射線)을 내려올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 다행이던 시절이었다. 이러니 사격이 어찌 레포츠, 즉 여가를 활용한 운동이겠는가.
사격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손맛을 볼 겸 해서 가족들을 모아놓고, 사격 조교처럼 “이번 주말엔 사격장을 가겠노라!”고 선언했다. 아내는 말할 것도 없고 아이들까지 사뭇 긴장하면서도 좋아라 한다. 아내는 친정아버지한테 “내가 말야, 6.25 때 총에 맞아 귀가 잘리는 상황에서도 살아난 인생이라고” 하는 소리를 귀가 닳도록 듣고 자랐기에 언젠가는 총대를 꼭 한 번 잡아보고 싶어했다.
우리 가족은 경기도 화성에 있는 경기종합사격장으로 향했다. 이곳은 누구라도 찾아가 사격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사격을 즐겨보지 못한 사람들이 대개 처음 선택하는 종목은 클레이 사격이다. 클레이 사격은 일반인들에게 가장 많이 보급되어 있고 동호인도 1만명이 넘는다.
내가 먼저 클레이 사격대에 섰다. 제대하고 예비군 훈련장에서 몇 방 쏘아본 뒤로는 처음이다. 총을 들고 보니 어깨가 움츠러들고 내 숨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긴장된다.
클레이 사격은 정조준하는 사격이 아니다. 대충 총구에 표적이 가렸다 싶으면 방아쇠를 당기는 ‘감’(感)의 사격이다. 그도 그럴 것이, 클레이 사격용 총에 들어가는 실탄은 탄두가 한 알 박힌 군용 실탄이 아니라, 은단만한 납알이 300개 가량 들어 있는 산탄(散彈)이다. 방아쇠를 당기면 한 알의 총탄이 날아가는 게 아니라 엽총(獵銃)처럼 300개의 납탄이 뿌려지는 것이다.
이쯤 되면 표적을 잘 맞힐 수 있을까, 예전 실력을 회복할 수 있을까 등의 걱정은 좀 덜어내도 된다. 표적은 사대(射臺)에서 12m 가량 떨어진 지면에서 솟아오른다. 포물선을 그리면서 10m쯤 솟아올랐다가 50m 가량 날아가 떨어지는데, 시속 40km쯤 된다. 그 사이에 표적을 맞혀 박살내야 한다.
즉 클레이 사격은 날아가는 접시를 맞히는 경기인 셈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접시가 큰 것으로 알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 경험으로 그런 줄 아는데, 이것은 스포팅 클레이(Sporting Clay)라고 멀리서도 금방 눈에 띌 정도의 큰 접시를 깨는 경기가 따로 있다. 스포팅 클레이는 우리나라에는 아직 도입되지 않았다. 클레이 사격에서 사용하는 표적은 지름 11cm로 손아귀에 잡힐 만한 작은 접시다. 이 표적을 진흙(clay)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클레이(clay) 사격이라는 명칭이 붙은 것이다.
클레이 사격은 18세기 영국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당시 귀족들은 자유롭게 사냥할 수 있는 사냥터가 있었지만 평민들은 그렇지 못했다. 때문에 사냥을 하고 싶은 평민들은 비둘기를 날려 그것을 표적으로 사격을 했는데, 이것이 클레이 사격의 기원이 되었다. 이 때문에 클레이 사격의 진흙 접시를 피전(pigeon·비둘기)이라고 부른다. 좀 잔인하기는 하지만 클레이 사격은 처음부터 즐기기 위해 고안된 셈이다.
클레이 사격은 25발을 기준으로 1라운드씩 진행된다. 보통 사격장을 즐겨 찾는 사람들은 2, 3라운드 사격을 하고 돌아간다. 1라운드 쏘는 데 우리가 찾아간 화성의 경기도종합사격장은 2만원을 받는다. 물론 총을 제공하고 사격 코치들이 지도해 준다. 그러니 사격장을 한 번 찾는데 4만~6만원은 드는 셈이다. 이 비용은 마니아들에 견주면 새 발의 피다. 표적이 연달아 두 개 솟아오르는 더블트랩을 즐기는 조순덕씨(48)는 하루에 250발씩 쏘아댄다. 연회원이기 때문에 비용이 25% 할인되기는 하지만 하루에 15만원어치씩 날려보내는 것이다. 그런데도 조순덕씨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사격을 하는 이유는,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힘은 사격만한 게 없고 겨냥한 표적을 맞혔을 때의 쾌감은 무엇에도 견줄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족 레포츠로 제격▼
1라운드, 25발을 쏜 내 실력은 6발 명중으로 그쳤다. 처음이어서 내가 맞힌 것인지, 표적이 날아와 맞은 것인지 가늠되지 않았다. 총 따로, 총알 따로, 총성 따로, 표적 따로다. 어설프나마 내가 시범을 보였으니 이제 가족들 차례다.
클레이 사격은 14세 이상부터 혼자 쏠 수 있는데, 초등학교 6학년짜리 큰애는 코치의 지시에 따라 총을 들어올리고서 방아쇠를 잡아당긴다. 몸에 힘이 없어 개머리판의 반동에 몸이 출렁한다. 다섯 발째에서 처음으로 명중되었다. 우리는 손뼉치고 환호성을 질렀다. 10발 정도 쏘자 제법 맛을 들였는지 큰애는 총을 놓으려 하지 않는다.
다음은 아내 차례다. 집을 나설 때와는 달리 사대에 오르기를 주저한다. 사격 코치가 어깨에 총을 걸쳐주자 그제야 간신히 총열에 두 눈을 가지런히 맞춘다. 방아쇠를 한 번 잡아당기고 나서는 제풀에 놀란다. 귀마개를 하지 않았으니 총성에 기겁할 만도 하다. 세 방을 쏜 뒤로는 만사에 뜻을 잃은 듯한 태도다. 마치 마구 얻어맞은 사람 같다. 코치는 “사대엔 제 발로 오르지만, 마음대로 내려가지는 못합니다”고 엄포를 놓는다. 10발쯤 쏘고 나니 기진맥진이다.
나는 두 번째 도전을 했다. 연달아 네 방을 맞혔다. 첫번째와는 확연히 달랐다. 쏠 때마다 맞힐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실제 맞히고 나니 몸에 전류가 흐르는 것 같다. 마치 손끝에서 빠져나간 전류가 방아쇠를 거쳐 실탄에 실리고, 총구를 통과해 표적까지 닿은 듯하다. 비로소 손맛이 느껴진다.
집에 돌아와 샤워하고 나서 보니 큰애의 어깨는 피멍이 들어 있다. 개머리판이 어깨를 친 것이다. 녀석은 “총을 쏘고 온 것이 아니라, 총에 맞고 왔다”며 우스갯소리를 한다. 아내는 어깨뿐만 아니라 볼도 부은 것 같다면서 자꾸 거울을 들여다본다. 그래도 큰일 하나를 해치운 듯 뿌듯한 표정이다. 다음에 또 따라 나설 거냐고 슬며시 물으니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다음에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평소에 아빠 노릇을 제대로 못한 직장인들에게 권한다. 사격은 부권(父權)을 회복할 수 있는 드문 레포츠니 적절하게 활용해 보라고….
< 허시명 / 여행작가 > storyf@yahoo.co.kr
◇ 메모 : 사격장은 각 도(道)에 하나꼴로 있다. 서울 태릉종합사격장, 화성 경기종합사격장, 춘천종합사격장, 창원종합사격장(경남), 청원종합사격장(충북), 전주종합사격장, 나주종합사격장(전남)이 있고, 문경과 제주도에도 클레이 사격장이 있다. 사격 경기는 클레이 사격과 소총과 권총을 사용한 라이플(Rifle) 사격으로 나뉜다. 레포츠로 널리 보급된 클레이 사격에는 스키트, 트랩, 더블트랩, 아메리칸 트랩, 스포팅 클레이 등 다섯 종류가 있다. 표적이 양옆에서 날아오는 스키트, 표적이 상하좌우로 불규칙하게 나오는 트랩, 연달아 2 개의 표적이 나오는 더블트랩은 올림픽 정식 종목이다. 아메리칸 트랩은 흥미를 갖고 쉽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든 동호인용 클레이 사격이다. 일반인의 경우 아메리칸 트랩을 1년쯤 쏘고 나면 경기용 사격으로 넘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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