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디자인, 세상을 바꾼다]0과1의 비트로 꿈 실현

  • 입력 2000년 10월 22일 20시 24분


▼사이버 공산에서 창조한 새로운 우주▼

이곳은 또 다른 은하계. 아득하고 광대한 이 공간에서 나는 끝없는 항해를 한다. 인간은 중력의 구속성과 구텐베르크의 활자계를 벗어나 가상 공간이라는 새로운 우주를 창조해 냈다. 네트와 네트가 연결되고 중첩되면서 무한히 확장되는 이곳은 익명의 공간이기에 완전히 자유롭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디자인이다. 나의 모든 상상과 욕망이 0과 1의 비트를 통하여 디자인된다.


▼원초적 욕망까지…▼

모토롤라는 24시간 인터넷 서비스를 위해 미래 지향적인 캐릭터가 필요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를 위해 ‘타이타닉’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세운 칼리프 특수효과 스튜디오는 미야(MIYA)를 탄생시켰다. 미쉘 홀게이트라는 여배우의 모습을 본뜬 후 만들어진 미야는 처음엔 너무 실제 인간 같아서 거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고 한다. 스튜디오는 다시 인공적 터치를 더해서 현재의 미야를 만들었다. 이제 인간인 우리는 진주빛 살결을 가진 우아한 인공의 여성에게 오히려 매력과 흥미를 느끼게 된 것이다. 실제로 현실의 여배우가 자신의 역을 포기하게 만들었으니 가상인간이 현실의 인간을 대체해버린 셈이다. 인간 겉모습의 한계를 극복한 그는 2001년 아카데미상 후보로 등장한다. 인간이 스스로 만든 인간과 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또 다른 욕망의 공간. 사이버 섹스에서는 대상을 자신의 취향대로 디자인한다. 즉 자기 자신의 욕망을 형상화해서 자신과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인간의 원초적 욕망은 이제 어떤 제약이나 금기 없이 극단적으로 실험될 것이다. 클릭, 단 한번으로.


▼내가 나를 디자인 한다▼

가상공간 중 또 하나의 중요하고 상징적인 곳은 게임 공간이다. 미국의 권위 있는 디자인 잡지 I.D.의 PC게임 컨테스트에서 금상을 받은 ‘심즈 시티’ (Sims City) 게임을 보자. 이 공간에서 우리는 말 그대로 신이 된다. 피부색부터 성격까지 나에 의해 디자인된 인물은 직업을 선택해서 현실과 똑같이 생활한다. 나의 가상 분신인 아바타는 주어진 빈 주택을 고급가구로 채우고 페라리, 알파 로메오 스파이더를 몰고 다니면서 여자 친구에게 페라가모 수트를 선물한다. “어떤 나를 만들까?” 나는 끊임 없이 디자인만 하면 된다. 이 공간에서 디자인은 더 이상 디자이너만의 몫이 아닌 사용자가 같이 행하는 인터렉티브 행위로 확장된다.

‘디아볼라’에서는 내가 세운 전술만이 승패를 가름한다. 그것으로 끝이다. 현실에서처럼 내가 제어할 수 없는 모략이나 치사한 압력이 등장하는 경우는 없다. 가상공간의 게임은 이렇게 현실을 벗어난다. 당연히 나는 구속적인 현실을 잊고 노매드(nomad:정처없는 영혼)가 되어 끝없이 항해하고 싶어진다.


▼'그 정보'를 가장 '그것'답게…▼

현재 가상공간에서 가장 심도 깊게 발전하고 있는 것은 정보 디자인 영역이다. 미국의 MIT미디어 랩에서 제작한 탈무드 프로젝트는 영역본과 프랑스어 번역본 그리고 프랑스 철학자의 해석으로 되어 있다. 탈무드의 본문인 토라를 화면에 띄우면 연관되는 설명과 번역본이 뒷 편으로 희미하게 떠오르고 옆으로 비스듬히 정렬된 주석에서는 키 워드가 움직이며 시선을 자극한다. 우리가 말이나 정보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여러 겹의 복합적인 사고의 흐름이 시각화 된 것이다. 이 화면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마치 짙은 안개 같이 장구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탈무드의 지혜가 서서히 떠올랐다 사라지고 다시 떠오르는 과정을 보는 것 같다. 가상공간의 정보 디자인은 이렇게 이미지, 움직임, 음향과 음악, 글자의 변형 등으로 그 정보를 가장 그것답게 형상화하면서 무한한 비약을 이루고 있다.


▼그대에게 보내는 내마음도…▼

e―card는 욕망도, 광대한 정보도, 또 다른 나의 디자인도 아닌 순수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공간이다. 이 공간은 현실의 나를 확장시킨다. 게임이 현실에서 나를 고립시킨다면 e―card, ‘I Love School’등의 커뮤니케이션 공간은 나를 일상으로 회귀케 하며 사람들을 사랑하게 만든다. 이것 역시 가상공간의 디자인이 지닌 힘이다. 보이지 않는 인간의 마음을 살아 움직이게 형상화시켜내는 디자인의 힘인 것이다.

21세기에는 지구상 40%의 인간이 가상공간에서 생활한다고 한다. 이 공간은 쇼핑몰, 공개 토론, 채팅, 동창회, 박물관 방문, 환상적인 아트숍, 드라마 내용에 관한 건의 등등 다양하고 무한한 곳으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이 신천지 우주에서 인간 마음의 끝없는 발화를 위해 디자인은 폭발적으로 팽창하고 있다. 이 공간이 과연 디스토피아로 향할지, 유토피아로 향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전승규(국민대 조교수)skjeon@kookmi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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